서유럽 순방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관계의 발전이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렇지만 단순히 회담을 위한 회담이라든가 일시적인 이벤트성 회담은 지양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한국 대통령들의 외국 방문 때 남북 관계와 관련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정상회담에 관한 것이다. 민감한 질문이어서 대통령들은 직설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보다 원론적이고 교과서적인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전 발언이나 정부의 대북(對北) 태도와 비교하면 뉘앙스에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 5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 (북한 지도자를) 만난다고 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답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올해 8월 “큰 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인식의 남북 정상회담은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번 발언을 두고 새로운 대북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예비적인 답변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달 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5·24 대북 제재조치의 해제를 촉구하자 류 장관이 “정부도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다”고 답변한 것도 정부의 기류 변화와 관련해 눈길을 끈다.
경색된 남북 관계를 푸는 데 정상회담만큼 효과가 큰 것은 없다. 그러나 정상회담 그 자체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곤란하다. 대가를 노리는 북한의 의도에 끌려가서도 안 된다. 이명박 정부 때 북한이 정상회담 조건으로 5억∼6억 달러의 현물을 요구하는 바람에 협상이 결렬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과거의 비정상적인 관행과 단절해야 한다.
김정은은 나이가 젊고 집권 기간이 짧아 북한을 어디로 끌고 갈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남북 대결 구도로는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에게 오히려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이 북핵 문제 해결과 개성공단의 국제화, 이산가족 상봉 등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면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