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미]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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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한자 좌(左) 우(右)는 손을 가리키는 상형문자 아래 각각 장인 공(工)과 입 구(口)가 결합한 회의 문자다. 그런데 왜 왼쪽에 工이 있고 오른쪽에 口가 있을까. 갑골문과 금문학의 대가인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은 이렇게 해석한다.

工은 신을 부르는 주술도구이고 口는 축문을 봉납하는 그릇이다. 즉 왼손에는 주술도구를, 오른손에는 축문 그릇을 들라는 의례 용어인 것이다. 제사장이 사당 문(門) 앞에 축문 그릇을 놓고 신에게 아뢰는 것이 ‘물을 문(問)’이오, 신의 응답을 듣고자 애쓰는 것이 ‘숨을 암(闇)’이다. 시라카와 선생은 한자란 의례상의 실천을 자형으로 영상화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한다.(‘한자 백 가지 이야기’)

그렇다면 인간으로 하여금 문자를 만들게 한 원동력이자 그토록 애타게 듣고자 하는 신의 응답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앞날의 길흉화복일 것이다. 반대로 앞날을 미리 알아버리면 인간은 신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다.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이자 관리인 원요범(1533∼1606)은 자신의 미래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요범에게 어머니는 과거 시험을 포기하고 의술을 배워 생계를 꾸리라고 권한다. 그런 요범 앞에 공 노인이 나타나 “내년에 시험에 합격할 텐데 왜 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나무라며 “현 시험에서 14등, 부 시험에서 71등, 제학 시험에서 9등을 할 것”이라고 점을 쳐주었고, 실제로 이듬해 시험 결과는 공 노인의 예측 그대로였다. 이어 공 노인은 요범의 평생을 예언했다.

“모년에 시험을 치르면 몇 등을 하고, 모년에는 관리가 되고, 모년에는 승진을 하며, 이후 재임 3년 반이 되면 곧바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53세 8월 14일 축시에 안방에서 생을 마칠 것이나 애석하게도 자식은 없네.”

이 말을 기록해 두고 나중에 결과와 맞춰 보니 등수까지 틀림없자, 요범은 정해진 운명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구하려는 마음이 없어졌다. 사실상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선방에 들어간 요범과 마주한 운곡 선사는 “그대가 호걸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범부(凡夫)에 불과하다”고 꾸짖으며 “운명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복은 자신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공덕과 과실을 기록하는 공책을 준 뒤 매일 선행을 베풀면 숫자를 적고, 반대로 악행을 하면 기록된 숫자를 지워 나가는 식으로 3000가지 선행을 하도록 했다.

이후 요범은 예부 과거 시험에서 3등을 하리라는 공 노인의 예측과 달리 1등을 했고, 아들을 얻었으며, 69세에 인생 지침서인 ‘요범사훈’을 써 아들에게 남기고,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요범사훈’ 1편 ‘입명지학(立命之學·운명을 세우는 공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천하에는 총명하고 뛰어난 인물이 적지 않으나 그들이 덕을 더욱 닦지 못하고 학업을 더욱 넓히지 못하는 까닭은 단지 ‘인순(因循)’ 두 글자가 그들의 일생을 지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호암 역 ‘요범사훈’) 인순은 낡은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가리킨다. 운명에 매달리는 것이 곧 인순에 얽매여 일생을 지체하는 어리석음이다.

왼손에 주술도구를 들고, 오른손에 축문 그릇을 든 채 어딘가 있을 신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찾을 심(尋)’이다.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 겸허한 마음으로 신 앞에 나아가 매일 반성하며 선행을 베풀고자 노력할 때 타고난 운명도 바뀐다. 성경 말씀에도 있지 않은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khmzip@donga.com
#문자#운명#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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