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재호]11월 11일은 책 선물하는 ‘빠삐로 데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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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11월 11일 속칭 ‘빼빼로 데이’는 1990년대 중반 영남지역 일부 여중생들 사이에서 비롯됐다는 게 제과업계의 설명이다. ‘빼빼로’라는 가늘고 긴 막대과자처럼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라고 1 자가 네 번 들어가는 날에 아이들끼리 이를 주고받은 게 시초라는 것이다. 사춘기 소녀들의 감성이 낳은 자연발생적 현상임을 애써 강조하려는 것처럼 들리는데 글쎄다. 시작은 그랬을지 몰라도 이를 ‘데이’ 수준으로까지 확산시킨 것은 상술(商術)이다.

마트나 제과점에 가면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하게 포장된 막대과자 상자가 가득 쌓여 있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마음에 상처나 입지 않을까 걱정된다. 부담스럽기는 어른도 마찬가지다. 요즘 직장에선 남자직원이나 상사가 여직원들로부터 ‘빼빼로’ 한두 봉지쯤은 선물 받아야 체면이 선다. 무슨 세시풍습도 아니고 기껏해야 제과업자들의 배만 불리는 이 기이한 변종 유행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나.

국내 유일의 책 방송사인 온북TV의 조철현 대표(52)가 ‘빼빼로 데이’를 책을 선물하는 날로 바꾸는 캠페인을 벌리자고 제안해온 것도 이런 공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빼빼로’가 아닌 ‘빠삐로 데이’라고 하자고 이름까지 지어 보냈다. ‘빠삐로’는 고대 이집트에서 종이로 사용하던 파피루스의 스페인어(語). ‘빠삐로’로 한 것은 ‘빼빼로’와 발음이 비슷해 캠페인의 취지를 좀 더 빨리 쉽게 알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이름이야 어떻든 의미 있는 일이어서 후원과 동참을 약속했다. 철(鐵)이 산업의 쌀이라면 책은 문화의 쌀이다. 문화로 지칭되는 거의 모든 것은 책으로부터 나온다. 한 개인과 사회의 지적 수준의 척도가 책이다. 책의 가치를 어디 막대과자에 견주겠는가.

마침 문용린 서울시교육감도 지난달 23일 범국민적인 책 나누기 운동을 펴겠다고 선언했다. 한 사람이 ‘책 씨앗’이 돼서 3권의 책을 3명의 친구에게 주고, 그 책을 받은 3명이 또 다른 3명에게 책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책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문 교육감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부모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앞장서 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지역의 초중고교생은 어린이집까지 포함해 120만 명에 이른다. 이 수가 당장 ‘빼빼로’ 아니, ‘빠삐로 데이’부터 책 나누기 운동을 벌인다면 파급력은 상당할 것이다.

직장인들도 이 대열에 동참했으면 한다. 막대과자의 시장규모는 1000억 원대이고, 11월11일 전후해서만 500억 원어치가 팔린다고 한다. 책이 그 절반만 팔려도 우리가 얻게 될 지식과 지혜의 가치는 헤아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오로지 책에서만 인류는 완전한 진리와 사랑과 아름다움을 안다”(조지 버나드 쇼)고 했다. 11일은 소중한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가을이 깊어간다.

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빼빼로 데이#책#빠삐로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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