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의 동북지역을 다녀왔다. 랴오닝대에서 열린 중국 한국학 연례대회에서 ‘미국의 한국학과 한국학의 세계화’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점차 발전하고 있는 중국 내 한국학 연구 현황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랴오닝대가 있는 선양은 청나라의 수도였고 동북지역은 멀게는 고구려, 가깝게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이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학술대회와 개인적 소회를 떠나 북-중 관계 전문가 및 대북 무역을 하는 중국 기업인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소득이었다. 이들과 토론을 하고 북-중 접경지역을 방문하면서 남한의 5·24조치와 유엔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북한의 경제가 유지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 중국의 대북정책이 투트랙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정치 외교적으로 볼 때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고 유엔의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동참하며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보다 박근혜 대통령을 먼저 초청해 환대하는 등 뭔가 변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를 반영하듯 북-중 관계에 중요한 변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과연 그런가?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중국도 동참한 유엔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중 간 무역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올 8월까지의 북한의 대중(對中) 수출은 18억5100만 달러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7.9%나 증가했다. 중국 정부가 나서서 대북 경협을 추진하진 않더라도 유엔 제재에 영향을 안 받는 소규모 무역은 동북3성을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핵 문제 등 주요 안보사안은 중앙정부가 미중, 한중 관계라는 큰 틀 속에서 다루고 대북 경제교류는 주로 지방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북 무역을 하는 중국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압록강변에 조성될 황금평경제특구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국제사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중국 중앙정부는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고 국영기업의 참여도 독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성공단처럼 중소기업이 진출해야 하는데 중국 정부가 보증을 서지 않는 한 이들 역시 위험 부담으로 주저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대북 무역은 활성화되고 있었다. 때마침 단둥에서 열린 제2차 조중(북-중) 경제무역문화관광박람회에 참가한 북한 기업은 작년에 비해 30% 증가한 130개로 늘어났다. 북한과 수산업을 하고 있다는 한 중국 기업인은 자신이 들여온 북한 생선회를 대접하면서 오염되지 않은 자연산이라고 자랑했다. 이처럼 단둥 창춘 등 동북3성 내 지역들이 북한과 꾸준히 무역을 하는 동안 이곳에서 활동했던 한국의 기업이나 ‘보따리장수’들은 위축된 상태로 남북 간 정치적 환경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도 이제는 좀더 실리 위주의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이 투트랙 접근을 하듯이 북핵 문제 등 외교 안보적 사안은 국제적 호흡을 맞추더라도 다양한 루트를 통한 대북 경협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안보를 강화하되 대화의 장은 열어놓겠다는 것인데 지금처럼 남북 관계가 냉각될수록 북한 접경지역을 활용한 간접적 대북 경협 등은 주요 우회로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동북3성의 정부 고위 인사와 기업인을 초청해 투자설명회 형식의 ‘동북3성 경제포럼’을 연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낙후된 동북3성 개발을 위해 한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중국과 대북 경협의 우회로를 찾으려는 한국의 이해가 일치할 수 있다.
정부 주도의 남북경협뿐 아니라 한중 합작투자 등 중국의 동북지역을 활용한 간접적 경협 등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남북 관계가 정체될수록 북한은 점점 중국의 동북아 경제권으로 흡수돼 가고 있음을 직시하고 대북 경협의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노력을 통해 한반도와 중국의 동북지역을 묶는 새로운 경제권 형성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중국 한국학 학술대회에 참석한 한 중국 학자는 공개적으로 “남북 경협이 주춤한 이때 아예 북한을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과연 이러한 주장에 대한 한국의 대답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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