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병선]수준 높아진 아이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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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문화부 기자
민병선 문화부 기자
최근 20대 ‘아이돌’ 스타를 자주 만났다.

6일 개봉한 영화 ‘동창생’의 주인공인 그룹 빅뱅의 최승현(탑). 그는 영화에서 눈빛으로 말하는 간첩 역할을 맡았다. 선 굵은 그의 연기가 눈여겨볼 만했다. 만나보니 최승현은 영화 속 인물처럼 진중한 분위기였다. 말수는 적지만 기자의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하게’ 답했다. 적절하다는 말은 영화 홍보를 위해 기삿거리가 될 만한 말을 하면서도 본인의 이미지에 해가 되는 내용은 피해가는 노련함을 뜻한다. 부리부리한 눈과 날카로운 이미지 때문에 선입견을 가졌던 기자는 그를 다시 보게 됐다.

그룹 엠블랙 이준은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다. 그는 ‘배우는 배우다’에서 무명에서 톱스타로,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굴곡진 인생을 연기했다. 그는 이제 스물다섯이고 이번이 첫 주연이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아이돌도 연기를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 ‘톱스타’의 서른아홉 배우 엄태웅과 비교해도 뒤질 게 없다.

치킨과 맥주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준은 당당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를 중퇴하고 가수로 나선 인생사와 연기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가슴은 뜨거우면서도 생각은 균형이 잡혀 있네.’

지난달 개봉한 ‘깡철이’의 유아인은 달변이었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회 이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과감하게 피력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를 성찰하고 이해의 벽을 깨는 게 배우란 직업의 장점 같다’ ‘계단을 올라갈수록 사람들의 비판이 줄어든다. 객관화하고 냉정해지지 않으면 성장하기 힘든 것 같다’ 등의 말을 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대에 유아인만큼 당당하고 논리적이었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봐주세요.” “부족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예전 연예인들이 인터뷰 때 주로 했던 말이다. 요즘 아이돌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요즘 아이돌은 키가 크고 외모가 뛰어나다. 말도 잘한다. 사람을 대하는 매너도 잘 훈련돼 있다. 매니지먼트사에서는 어릴 적부터 교육을 시킨다. 하지만 소속사의 교육만으로 그들이 즉흥적인 상황에서 말 잘하기는 쉽지 않다.

기자의 생각에 아이돌의 ‘수준’이 높아진 이유는 우수한 자원이 요즘 연예계로 몰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연기돌’ 이제훈과 송중기는 명문대를 다녔다. 남자들에게도 연예인이 좋은 직업이 된 시대다.

‘88만 원 세대’ ‘잉여 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사회에서 높은 직업지위를 얻기 힘들어진 점도 연예계에 젊은이가 몰리는 이유로 보인다. 이들은 기존 세대에게서 경제, 정치적인 영역을 뺏기보다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문화 영역을 공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준 높은 아이돌의 등장을 마냥 반길 수 없는 이는 기자뿐일까?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
#소속사#교육#연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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