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을 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갑작스럽게 알려진 2011년 12월 말. 급하게 중국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로 파견됐다. 북-중 국경의 현황을 전하고 탈북자를 접촉하기 위해서였다. 중국 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외국 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북한으로 향하는 도로는 총을 든 중국 군인이 막고 검문검색을 했다.
이런 긴장 속에서 어렵게 만난 현지 조력자의 일성(一聲)은 ‘도청’이었다. “전화는 유선이든 무선이든 모두 도청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라. 중요한 얘기는 절대 전화로 하면 안 된다.”
도청당하고 있다는 우려만으로도 자유는 크게 제약을 받았다. 미리 약속한 날씨 얘기 등을 암호 삼아 정보를 교환했다. 만날 장소도 몇 곳을 미리 정해둬야 했다. 휴대전화도 여러 대 준비해야 했고, 전화를 받을 수는 있어도 절대 걸어서는 안 되는 상대방도 있었다. 통화를 할 때도 질문이 조금만 민감해지면 대부분의 현지인은 “전화로 할 얘기가 아니다”라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도청을 당하고 있다는 불안은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걱정도 불러일으켜 모든 행동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10여 일이 지나고 북한 식당의 북한 사람을 촬영하다가 결국 현지 공안과 맞닥뜨렸다. 그들은 신분증을 요구했다. 순순히 내줄 수는 없었다. “나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다. 신분증을 보여줄 이유가 없다. 공안이라는 당신들의 신분증부터 먼저 확인해야겠으니 보여 달라.” 뜻밖에도 이 장면에서 ‘민주주의와 법치’가 중국에서도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 같아 적잖이 놀랐다. 기자의 주장에 대해 공안들은 “죄를 짓지 않은 것은 맞다”며 자신들의 신분증을 보여주고 한발 물러섰다. 그 대신 자신들의 업무 범위를 설명하며 신분증 확인에 협조해 줄 것을 ‘부탁’했다.
중국 공안이 기자를 줄곧 도청·감시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범죄 혐의가 없으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을 중국 공안도 알고 있었다.
옌볜의 경험이 되살아난 것은 세계인을 무작위 도청한 미국 도청 사태 때문이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잣대로 비난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그 중국의 공안도 익혀가는 민주 사회의 기본을 미국이 잊은 것일까. 각국 정부 수장까지 도청한 것에 대해 미국은 “외국 정상의 도청은 첩보 활동의 기본”이라는 취지의 반응을 보였다. 기술과 우월한 군사력을 가졌으니 도청 행위를 하다 들켜도 상관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같이 힘을 합쳐 적을 물리치자던 친구가 내 전화를 도청했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배신’이라고 부른다. 일부 국가에서 도청을 어렵게 하기 위해 인터넷의 대체 시스템을 고려한다는 소식이다. 힘까지 갖춘 나라가 도청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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