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과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주요 경제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한 지 10개월쯤 됐다. 세종시 공무원들은 전화할 때 처음 하는 말이 “어디 있느냐”라고 한다. 장관 차관이나 주요 간부들이 서울에 있을 때가 세종시에 있는 때보다 많기 때문이다. 특히 9월 정기국회 개회 이후엔 국회 출석 등으로 주로 서울에 있고 세종시에는 가끔 들른다고 한다. 필자도 최근 뭔가 문의하려고 세종시에 전화를 하면 담당자가 대부분 서울에 가고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급한 일이면 휴대전화로 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근무지가 세종시라는 먼 곳에 있는데도 일하는 방식은 과거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무회의, 관계 부처 협의, 국회 출석, 관련 업체나 단체와의 간담회 등을 아직도 직접 만나서 한다. 화상회의나 전화회의 등 정보기기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으나 높은 사람들이 불편해하니까 있으나마나다.
이렇게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비능률이 엄청난데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세종시에 많이 거주하는 하위 직원들은 서울에서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국회 상임위 등 각종 회의에 참석하려면 새벽에 출발하고 밤늦게 돌아간다. 반대로 수도권에 많이 거주하는 고위직은 세종시 출퇴근에 장시간을 허비한다. 경제적인 부담 외에 체력적으로도 힘들어 업무의 집중도가 떨어진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정책 내용이 부실해지고 정책 결정이 늦어진다는 점이다. 세종시에는 대부분의 경제 부처가 있다. 불확실성이 크고 모든 것이 빨리 변하는 시기에는 행정의 신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정기국회가 열릴 때는 서울 출장이 잦아 세종시 공무원은 하루에 4∼5시간밖에 근무를 못한다. 예컨대 오전에 관계 부처 협의를 하고 오후에 국회에 출석하면 그날은 그걸로 끝난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몰입해서 근무하는 시간은 별로 없다. 경제가 어려워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시기에 정책 당국자가 하루에 몇 시간만 일해서야 되겠는가.
모든 법령 개정이 2∼3개월씩 늦어지면 그것의 누적 효과로 국가경쟁력은 크게 떨어진다. 공무원이야 답답할 게 없을지 모르지만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는 기업은 속 터질 노릇이다. 세종시 공무원의 근무기강도 제대로 설 리가 없다. 장관 차관 등 간부들이 자리에 있어야 조직원이 긴장하고 일할 터인데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늘 출장 중이라면 그 조직이 어떻게 될 것인가. 정부 업무는 기업처럼 평가가 매섭지 않아 근무기강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세종시의 비능률은 청와대나 국회 등 보고를 받는 위치의 높은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먼저 인식하고 개선해야 한다. 높은 사람들에겐 대면 보고와 회의가 편리하다. 불편한 쪽은 하위직이므로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한다. 서울로 출장 가는 가장 큰 이유는 국회 때문이라고 한다. 국회 회기 중에는 장관이나 차관이 국회에 출석하면 답변 보좌를 위해 관련 국장, 과장과 실무자들까지 줄줄이 국회로 가야 한다. 국·과장들은 평상시에도 법안 설명을 하기 위해 의원회관에 자주 간다. 국회의원이나 보좌관이 자기들 민원 협의를 위해 공무원을 부르는 일도 많다. 장관이 서울에 있으면 직접 보고를 해야 할 간부들도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세종시의 비능률로 인한 부실 경제정책과 늑장 행정의 폐해는 수천억 원의 예산 낭비보다 더 나쁘다. 이 문제는 세월이 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하루빨리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예컨대 국무회의나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는 화상회의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회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국민을 위해 전향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 시절 격주로 화상 국무회의를 한 적이 있다. 별 불편 없이 임기 말까지 계속됐다. 국회와 관계 공무원과의 업무협의도 특정 요일에 몰아서 하면 서울 출장을 줄일 수 있다. 차제에 한국의 뛰어난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행정을 발전시켜야 한다. 일하는 방식도 개선해서 보고 단계도 대폭 축소해야 할 것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경제사령탑인 세종시 소재 부처의 행정 비능률부터 바로잡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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