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범’은 아동 유괴살인사건을 다뤘다. 15년 전 일어난 범행의 공소시효 완성을 앞두고 여주인공(손예진)이 범인 목소리와 비슷한 아빠를 의심하며 과거를 추적한다. 영화에 기자의 회사 건물(동아미디어센터)이 자주 나오고, 기자가 평소 출근길에 이용하는 시내버스도 등장해 친숙한 장면에 혼자 웃었다. 또 있다. 여주인공 이름(다은)이 우리 부서의 착한 아르바이트 학생과 같다.
더욱 눈길을 끈 부분은 여주인공이 기자 지망생이라는 점이다. 손예진 같은 미모의 여학생이 실력과 품성을 갖춘다면 언론사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손예진은 집안을 거론한다.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는 이유라면서. 손예진의 아버지(김갑수) 역시 딸의 탈락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 정말 그럴까.
동아일보의 임원 및 실국장 회의, 부장 회의에서 이 얘기가 나오자 모두 고개를 저었다. 영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며. 기자가 인력개발팀장으로서 채용에 관여했던 경험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집안을 이유로 수험생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공적 사적으로 만났던 다른 언론사의 임원이나 간부 역시 같은 얘기를 했다. 1년에 수백, 수천 명이 아니라, 많아야 10명 정도를 뽑는 조직에서 ‘빽’이 있는 집안의 아이라고 우대하는 언론사가 어디 있냐며 답답해했다.
언론사가 이른바 SKY를 선호할까? 신문 3사(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방송 3사(KBS MBC SBS)가 2004년과 2010년 수습기자를 각각 52명 선발했다. 그러나 합격자 중에서 SKY 출신은 38명(73.1%)에서 32명(61.5%)으로 줄었다. 합격자가 나온 비SKY 대학은 7곳에서 11곳으로 늘었다. SKY가 줄고, 다른 대학이 늘어난 이유는 지원자 분포와 연관이 있다. 이 기간에 SKY 지원자가 비슷하게 줄었다. 지원자가 많은 대학에서 합격자가 많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실제 그렇다고 기자는 분석한다. 학벌이 문제가 아니다.
기자 지망생의 실력은 논술과 작문, 기사 쓰기, 토론으로 평가한다. 품성은 어떻게 확인할까? 대답이 궁금한 분에게 KBS 다큐멘터리 ‘적과의 동침, 합숙면접’을 추천한다. 외환은행 신입사원 선발 과정에 관한 내용이다. 1만5000명 중에서 선택된 193명이 2박 3일간 어떻게 평가받고, 어떻게 이 중 절반만 합격했는지를 보여준다. 2007년 6월 21일 방영됐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조별 과제였다. 56개의 문서를 10명이 함께 정리한다. 평가자(인사팀 직원)는 “최선의 해결책을 조의 이름으로 제출하라”고 말한다. 마감 20분을 남기고 돌발 상황이 생긴다. 과제 5개를 추가한다. 평가자가 바빠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내레이터는 함정이라고 표현했다.
지원자의 실력, 즉 과제 내용만을 중시한다면 평가자가 현장을 지킬 이유가 없다. 과제 내용이 아닌 다른 점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무엇을 보는가? 지원자의 모습이다. 돌발 상황에 나타나는 본성. 마감을 앞두고 과제가 갑자기 바뀌어 당황하고 긴장된 순간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태도.
평가자는 과제 내용이 아니라 지원자의 언행을 메모한다. 카메라가 비춘 평가지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됐다. ‘타인의 의견 묵살’, ‘자기주장이 강함’, ‘합리적인 의견을 잘 듣고 얘기도 종합’…. 은행은 누구를 뽑았을까. 기자 지망생이라면 누구를 골랐을까. 언론사와 은행은 하는 일과 평가 방법이 다르지만 좋은 지원자의 기준은 비슷하다. 필기부터 합숙까지 늘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김갑수의 말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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