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문권모]밤(栗)이 그리운 계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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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서 ‘밤나무’ 관련 내용을 찾으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기록 중 대부분이 신주(神主·위패)와 관련돼 있다. 예로부터 밤나무는 신주를 만드는 좋은 재료였다. 이런 풍습은 중국 주(周)나라에서 비롯됐다. 밤나무는 씨밤에서 싹이 터 열매를 맺을 정도로 자라도 원래의 밤톨 껍질을 뿌리 부분에 고스란히 간직한다. 다른 나무는 대부분 떡잎이 씨앗 껍질을 모자처럼 쓴 채로 지상으로 나온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밤나무가 근원(조상)을 잊지 않는다고 여겼다. 단단한 목질과 떫은맛을 내는 타닌 성분의 방충 효과 때문에 신주 제조용으로 쓰였다는 해석도 있다.

▷조선 왕실은 신주를 만들 밤나무를 확보하기 위해 밤나무 숲을 가꿨다. 옛 문헌에 보면 율목봉산(栗木封山)이란 말이 나온다. 나라에서 밤나무를 기르는 산에 잡인의 출입을 막고 벌채를 금한다는 뜻이다. 국조보감에는 경남 하동의 쌍계사 부근 숲에서 신주 제조용 밤나무를 가꿨다는 기록이 나온다.

▷밤은 중요한 식량이기도 했다. 옛날에는 먼 길을 떠날 때 밤을 챙겼고 전쟁 때는 군량으로도 썼다. 우리 민족은 밤을 즐겨 먹었다. 삼한시대의 칠기 속에서 밤 세 톨을 발굴한 적이 있고, 좋은 음식만 올리는 제사상에도 밤을 올렸다. 밤은 곡식과도 맞먹을 만큼(동국이상국집) 영양가가 높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듬뿍 들어 있고 칼슘과 비타민도 많아 어린이들의 발육에 좋다. 비타민B1은 쌀의 4배 정도 들어 있다. 밤 속에 있는 당분은 소화를 촉진해 위를 튼튼하게 해준다.

▷올해는 밤농사가 대풍이다. 태풍이 없어 열매가 떨어지지 않은 덕이다. 하지만 수요는 늘지 않아 값이 지난해보다 떨어졌다고 한다. 사실 요즘은 예전만큼 밤을 많이 먹지는 않는다. 워낙 다른 먹을거리가 많은 데다 밤 껍질 까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겨울밤 군밤 맛까지 포기하는 건 아쉽지 않은가. 햇밤에 살짝 칼집을 내 오븐이나 전자레인지에 구워보자. 의외로 집에서도 그럴듯한 군밤 맛을 볼 수 있다.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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