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 구기종목에는 ‘신고(申告) 선수’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다. 팀이 등록할 수 있는 선수는 제한돼 있는데 그 속에 포함되지 못한 선수들이 신고 선수다. 각 구단이 ‘등록 선수 외에 이런 선수들도 있다’고 신고만 하면 돼 그런 이름이 붙었다. 예전에는 연습생이라고 불렀다. 계약금은 없고 최저연봉 이하의 급여를 받는다. 언제든 잘릴 수 있다. 등록 선수들의 훈련을 도우며 ‘신분 상승’의 기회를 노리는 신고 선수들은 맵고 고생스럽게 살아가는 ‘신고(辛苦)’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련을 이겨내고 스타가 된 신고 선수도 많다. 삼성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올 시즌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정규시즌 4위 두산이 한국시리즈까지 오른 데에는 포수 최재훈의 역할이 컸다. 2008년 신고 선수로 입단한 그는 2010년 군 복무 대신으로 경찰청 야구단에 들어가 기량을 키웠다. 지난 시즌부터 양의지의 백업 포수로 활약하며 ‘해뜰 날’을 준비해 온 최재훈은 올 시즌 타율 0.270에 2홈런 8타점을 기록했고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LG와의 플레이오프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2011년 넥센에 입단한 문우람도 올 시즌 팬들에게 이름 석 자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신고 선수다. 지난해 25경기에 출전해 타율 0.231, 3타점에 그친 그는 올 정규시즌에서 타율 0.305, 4홈런, 41득점, 28타점의 성적을 올리며 팀의 ‘복덩이’가 됐다. 운동을 그만두고 인생의 패자가 될 뻔한 이들은 절박함과 성실함을 무기로 멋지게 부활했다.
늘 약체라고 여겨지던 팀의 승리에도 팬들은 더 열광한다.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은 창단 후 8시즌 동안 퍼시픽리그 6개팀 중 꼴찌 3회, 5위 2회, 4위 2회를 한 만년 하위 팀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세이부를 7.5경기 차로 멀찌감치 따돌리고 정규시즌 우승컵을 거머쥔 데 이어 ‘거함’ 요미우리를 꺾고 일본시리즈마저 제패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족과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긴 연고지 도호쿠(東北) 지역의 주민들을 울고 웃게 한 약자의 역습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개룡남(개천에서 태어나 용이 된 남자)’이 사라지고 있다. 부모 잘 만난 덕에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은 자식들이 명문교에 입학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위풍당당하고 성적이 나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부인 못할 현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결과가 뻔하다면 사는 게 얼마나 허망할까. 한 번 꼴찌라고 영원한 꼴찌이랴. 땀과 눈물을 흘릴 각오가 돼 있다면 누구나 반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성공의 요건을 두루 갖춘 당연한 성공보다는 고난을 딛고 일어선 승리는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패자가 부활하고 약자가 역습하는 스포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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