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8·28 전월세안정대책 발표 후 기자는 이 난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썼다(전세의 안락사를 허(許)하라, 9월 3일). ①집값 상승 기대가 사라지면 전세가는 매매가에 근접하기 마련이다. 억지로 막을 이유가 없다. ②전세의 월세 전환 역시 피하기 힘든 추세지만 ‘연착륙 유도’는 필요하다. ③이에 대한 8·28대책은 ‘빚 줄 테니 집 사라’는 것으로 집값을 올린다. 가계부채를 부풀릴 수도 있다. ④이런 미봉책이 아니라 시장 정상화를 위한 장기 구상이 필요하다.
지난 수년간 주택시장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다. 자가보유율도 선진국 수준인 60%대. 억지로 더 높이려다가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주택금융에 거품이 끼기 쉽다. 기존 정책의 큰 성취다. 반면 예기치 않은 일도 일어나고 있다. 집값 상승 기대가 옅어지면서 2009년 이후 집값은 내리고 전세는 계속 오른다. 내 집보다 전세살이가 유리하다 보니 여유 있는 계층까지 전세를 고집해 전세금을 끌어올렸고, 이 과정에서 서민은 거주비용 측면에서 가장 불리한 월세로 밀려나고 있다.
그런데도 제도는 구태의연하다. 투기 방지를 위한 중앙정부의 획일적 포괄적 규제를 기본 틀로 하되 상황에 따라 고삐를 죄었다 늦췄다 하는 게 현행 주택정책의 뼈대다. 내 집 마련 수요만큼 교체수요 및 임대용 수요도 중요한데 공급은 ‘1가구 1주택’ 기조 아래 개인 및 지역거주자 위주의 청약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현 청약제도는 운이 결과를 좌우하는 ‘로또’식인 데다 너무 복잡해 ‘영리한 사람의 재산 뻥튀기’ 수단으로 변질됐다. 좋은 제도가 아니다. 분양가상한제 등 시장 기능을 저해하는 규제가 온존하며 중대형 아파트는 천덕꾸러기가 된 판에 소형주택 의무비율 등 물량 부족 시기의 공급 위주 정책도 여전하다.
향후 주택정책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두 가지, 보편적 주거복지와 시장 정상화다. 민간의 주택공급에 대해서는 불공정행위 차단 외에는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저소득층 지원 등에 주력하는 것이 옳다. 물론 집값을 자극하거나 가계부채를 부추겨선 안 된다. 우리 집값엔 여전히 거품이 많고 소득 수준에 비해 너무 비싸다.
세제는 투기억제나 경기조절에 이용하지 말고 조세원리에 맞도록 재편해야 한다. 부동산세의 본래 목적은 첫째 지역거주 여건 개선비용 충당, 둘째 부(富)의 재분배다. 집값 억제 수단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조세이론을 인정해야 한다. 담보인정비율(LTV) 등 주택금융규제는 금융안정성을 지키되 금융접근성을 저해하지 않도록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우선 생애최초주택에 대한 LTV부터 높여줄 필요가 있다.
월세 전환자들이 받는 충격이 크다. 효과가 있다면 임기응변 처방이라도 해줘야 한다. 월세 지출에 대한 소득공제를 지금의 정부안보다 크게 확대해야 한다. 저소득층에 임대료를 쿠폰식으로 지원하는 주택바우처는 좋다. 단, 임대 공급 확대와 동반해야 월셋값을 자극하지 않는다.
전체 주택 재고 중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이 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5%에 비해 너무 낮다. 임대 공급은 결국 민간에 달려 있다. 다주택 임대사업자에게 부담이 아닌 혜택을 줘야 한다. 특히 양도세 등 각종 세금중과(重課)는 즉시 폐지해야 한다. 수요에 맞춰 임대주택 품질을 다양화해야 하며 재개발할 때 짓는 임대의 평수 제한도 없애야 한다. 법인의 주택청약도 과감히 허용해야 한다. 한국에 주택임대전문법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블랙코미디다.
국회에 상정된 부동산법안들의 처리가 시급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어림없다. 시장 지형이 달라졌으면 그에 맞춰 정책의 기본 틀을 다시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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