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이나 자폐장애인을 고용해 명함과 인쇄물을 제작하는 장애인 기업 베어베터의 이진희 대표는 며칠 전 취직을 위해 찾아온 장애인 10명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의 고시를 개정하면서 더이상 장애인 직원을 뽑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자폐증이 있는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이 대표는 2011년 NHN(현 네이버) 임원 자리를 그만두고 나와 연계고용제도를 활용한 장애인 기업 베어베터를 세웠다. 연계고용이란 장애인 고용 의무를 채우지 못한 기업이 장애인 기업의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면 부담금의 일부를 면제해주는 것으로 일반 기업에 고용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을 위한 간접고용제도다.
평소 5000원으로 명함을 구입하던 기업이 베어베터에 1만 원을 주고 명함을 사면 정부가 7500원의 부담금을 면제해준다. 기업은 2500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연계고용에 동참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베어베터는 장애인 직원을 80명까지 늘렸다. 다른 직장에서 비장애인과 섞여 어렵게 일하던 장애인들은 최저임금을 받지만 베어베터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고용노동부가 연계고용의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고시를 개정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정부는 연계고용 감면액의 한도를 줄였다.
기업이 내야 할 전체 부담금의 절반이었던 것을 연계고용 기업과의 거래액 절반으로 낮췄다.
정부는 고시 개정이 장애인 고용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연계고용이 너무 활성화되면 기업이 장애인 직접 고용을 회피할 우려가 커진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만 받는 연계고용보다는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직접고용을 장려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연계고용으로 너무 많은 부담금 감면을 받는 도덕적 해이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연간 부담금 3000억 원 가운데 면제액은 40억 원 수준이다.
이런 조치는 베어베터엔 철퇴나 다름없다. 1만 원 거래에 7500원꼴로 감면받던 기업의 감면액이 1만 원 중 5000원꼴로 낮아지면서 거래 중단을 고민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고용부담금 면제로 기업들이 큰 돈을 아끼는 것 같아도 대기업의 경우 명함 거래처를 따로 관리하는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감면액만으로 비용 손실을 메우기 어렵다.
이 대표는 “직접고용이 무조건 간접고용보다 좋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시각이 차별을 불러왔다”고 말한다. 움직임이 불편한 신체적 장애인과 달리 의사소통이 어려운 정신적장애인은 직접 고용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체장애인의 고용률이 45.4%인 반면 정신적장애인의 고용률은 18.4%이다. 지적장애인은 14.3%, 자폐성장애인은 0.6%에 그친다.
연계고용을 통해 그나마 일자리에 대한 희망을 가졌던 정신적장애인들은 ‘직접 고용은 옳고 간접 고용은 그르다’는 정부의 일률적인 잣대 때문에 좌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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