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재명]아이돌의 스포츠 도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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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 27일 서울지하철은 밤 12시까지 연장 운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에 몰린 여학생 5만여 명을 수송하기 위해서였다. 콘서트 티켓은 예매 시작 10분 만에 동났다. 선착순 입장 탓에 콘서트장 주변엔 노숙 학생이 넘쳐났다. ‘그들’은 1996년 데뷔한 아이돌 그룹 ‘H.O.T’로, 한류(韓流)의 원조라 할 만하다. 지난해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는 ‘안승부인’이 등장한다. H.O.T 멤버 토니안(본명 안승호)의 부인을 자처하는 열혈 팬을 일컫는 말이다.

▷왕성한 활동으로 제2 전성기를 맞은 토니안이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같은 혐의로 개그맨 이수근, 방송인 탁재훈, 그룹 ‘신화’의 앤디, 방송인 붐 등도 줄줄이 검찰로 불려갔다. 이들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의 승리 팀을 맞히는 일명 ‘맞대기’에 맛을 들였다. 도박사이트 운영자가 휴대전화 문자로 경기 일정을 보내주면 팀을 골라 베팅하는 게임이다. 토니안 탁재훈 이수근 등은 각각 3억∼4억 원가량을 질렀다고 한다.

▷연예인들의 불법 도박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탁재훈과 함께 ‘컨츄리꼬꼬’로 활동한 신정환은 2010년 해외 원정도박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도박 사건에 연루되자 ‘도박 듀오의 탄생’이라는 말도 나온다. 스포츠 도박은 익명성을 보장하고 참여하기도 비교적 쉽다. 그래서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연예인들이 많이 빠져든다. 국내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 규모는 연간 13조∼39조 원이나 된다고 한다.

▷동아일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 50명을 대상으로 활동 중단에서 복귀까지 기간을 따져 보니 △음주운전 6.2개월 △도박 9개월 △폭행 13개월 △마약 22.7개월이었다. 이번에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도 자숙 기간을 거쳐 내년 하반기쯤 방송에 복귀할지 모른다. 연예인이라고 더 가혹한 처벌을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공인으로서 제대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스타 연예인이 도박에 빠지면 청소년이 뭘 보고 배우겠는가.

이재명 논설위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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