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손택균]표절의 기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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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균 문화부 기자
손택균 문화부 기자
대학 선배가 11년 전 작은 음식점을 열었다. 가게 이름이 어느 정도 널리 알려진 뒤 한 직원이 똑같은 메뉴로 비슷한 상호의 가게를 차렸다. 세 음절 단어 두 개로 구성된 원래 상호에서 뒤의 단어만 같은 어감으로 살짝 바꿨다. 전국 100여 개 가맹점을 거느린 프랜차이즈 업체 사장이 된 그에게 이제 와서 ‘혹시 표절 아니었느냐’고 묻는 것, 우스운 일이다.

선배는 “이 업계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어떤 아이템이 성공을 거두면 동업자나 피고용인이 앞선 경험의 문제점을 보완해 후발주자로 독립한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긴, 주말에도 이것저것 요리해서 아이들 먹이는 게 삶의 낙인 그에게 프랜차이즈 사장은 어울리지 않는다. 선배는 훗날 그 업체를 찾아가 한 가지만 요구했다. 비슷하게 따라 그린 엠블럼이 얼마 뒤 바꿔 달렸다.

최근 대중음악시장에서 한동안 또 ‘표절’이 화제였다. 겨울이 오니 찬 바람이 이는구나 싶은 것처럼 무감했다. 여론의 대세는 이제 ‘뭐 그런 하찮은 일 갖고…’인 듯하다. 관련 기사에 달린 독자 반응은 비슷비슷했다. “기자들아, 지겹다. 표절이라고 명확히 결론 나면 써라.” “많은 사람이 그 노래로 행복하게 즐겼으면 됐지 왜 쓸데없이 딴죽이냐. 도대체가 남 잘되는 꼴을 못 봐요. 못된 놈들 같으니.” “표절 논란 타고 한국 음악시장에 이름 알린 걸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더이상 문제 삼지 않는 거잖아.”

4년 전 가을. 몇 주 동안 한 가수의 표절 논란 취재에 매달렸다. 그가 내놓은 곡 일부가 외국 밴드의 곡과 상당히 유사한 것이 계기였다. 결국 기사는 나가지 않았다. 그 외국 밴드가 직접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괜한 일이 될 것이 뻔했다.

레퍼런스. 클리셰. 한국어로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굳이 외국어를 내세우는 상황의 까닭은 대개 비슷하다. ‘참조’라고 하면 출처를 밝혀야 할 듯하고, ‘상투적 표현’이라고 하면 멋없게 느껴진다. 무언가를 그저 참고해 재가공했을 뿐인지, 무의식적으로 상투적 표현을 사용했을 뿐인지, 그건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안다. 표절인지 아닌지, 가장 정확한 기준은 만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기술복제시대의 정점이다. 첨단 기술은 얼마나 더 정교하게 복사하고 모아 붙여 흔적 없이 짜 맞출 수 있는지 한없이 경쟁한다. 다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며 진리인 듯 고개를 끄덕인다. 회화보다 콜라주가 세련됐다 여긴다. 무엇이든 표절인지 아닌지 묻는 것, 촌스럽다. 훌륭하게 재해석하고 재가공해서 성공했으면 그만이지, 누가 처음 만들었다는 사실이 뭐 그리 중요한가. 좋은 게 좋은 것인 줄 모르고 흥겨운 잔치 분위기에 공연히 표절 운운하며 찬물을 끼얹는 것, 어리석다.

그래도 묻는다. 답은, 기준은, 바로 당신 마음속에 고이 감춰두지 않았느냐고. 스스로도 잊어버린 마음속 어딘가에.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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