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81>겨울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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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야기
―김상미(1957∼)

천 년 전 겨울에도 오늘처럼 문 열고 있었다
문 밖 짧은 해거름에 주저앉아 햇빛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는 북향,
쓸쓸한 그 바람소리 듣고 있었다

어떤 누구와도 정면으로 마주보고 싶지 않을 때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보는 창
나뭇잎 다 떨어진 그 소리 듣고 있었다

세상 모든 추운 것들이 추운 것들끼리 서로 모여
내 핏속 추운 것들에게로 다가와
똑 똑 똑
생의 뒷면으로 가는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있었다

물결치는 겨울 긴 나이테에 휘감긴 울창한
숲 향기와 지저귀는 새소리와
무두무미한 생의 입김들이
다시 돌아올 봄 문턱에다 등불 환히
켜는 소리 듣고 있었다

마치 먼 길 혼자 달려온 천 년 전 겨울
천천히 가슴으로 녹이는 것처럼
내 몸 안의 겨울 이야기들이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에 실려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기억 속으로
스며드는 소리 듣고 있었다

천 년 전 겨울에도 오늘처럼


시 전편에 뼈저린 쓸쓸함이 서려 있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이런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 때가 있다. ‘내 핏속의 추운 것들’, 슬프고 불행하고 추운 기억들이 밀려들어 생의 의욕을 잃고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때의 마음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필자는 정작 한겨울보다 가을의 끝에서 겨울로 막 들어서려 할 때 이렇더라. 일조량이 팍 떨어지면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어 우울증이 생기기 쉽단다. 햇빛이 보약! 햇살 한 오라기, 한 오라기가 금싸라기처럼 기껍다.

‘겨울 이야기’는 ‘삶의 추위’와 ‘삶의 외로움’의 이야기다. ‘먼 길 혼자 달려온 천 년 전 겨울’, 전생에서부터인 듯 쌓인 화자의 추위와 외로움을 누가 알아줄까. 당신만은 기억해 달라고 화자의 겨울 이야기가 함박눈으로 내린다. 겨울은 길어라. 하지만 난로 하나로, 석유 한 통으로, 담요 한 장으로, 한결 견딜 만하리라. 화자에게 털목도리라도 둘러주고, 따끈하고 달콤한 커피를 건네고 싶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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