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어제 정상회담을 하고 북한의 독자적인 핵과 미사일 능력 구축을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러 두 정상은 북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와 2005년 9·19 공동선언을 비롯한 비핵화 합의 이행도 촉구했다. 올해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불용(不容)’을 밝힌 데 이어 푸틴 대통령이 북핵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함으로써 북한은 더이상 기댈 언덕이 없게 됐다. 한-러 정상은 북한의 화학무기금지협약(CWC) 가입도 촉구했다.
한-러 정상은 정치 경제 과학기술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푸틴 대통령의 신(新)동방정책이 맞아떨어져 성과를 만들어 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이 참여하는 합의다. 러시아는 9월 러시아의 하산과 북한의 나진항을 잇는 54km의 철로 개보수 공사를 마쳤다. 코레일 포스코 현대상선이 2100억 원을 투자해 전체 사업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 지분 가운데 절반을 인수할 예정이다. 한-러 협력이 남-북-러 3각협력으로 확대될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한-러 협력은 북한이 잡아야 할 기회다. 북한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곳에 경제특구를 만들 계획이다. 외국 투자 유치를 확신하기 어려운 특구 개발보다는 한-러 정상이 지원하고 있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이 훨씬 크다.
나진항은 동북아시아의 화물을 유럽으로 보낼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도 북한은 나진항 1번 부두 운영은 중국에, 3번 부두는 러시아에 넘겼다. 독자적으로 항구를 개발하고 운영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참여해 나진항 개발이 확대되면 하산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통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물류 길이 열린다. 한국 일본 중국의 화물이 나진항을 거치면 북한은 통과료와 일자리를 챙길 수 있다. 북한이 한-러 정상이 보낸 메시지를 받아들여 핵과 대결 정책을 포기하면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시행된 5·24 대북 제재 조치 해제도 가능해진다.
푸틴 대통령은 이전 방문국인 베트남에서 일정이 지연됐다는 이유로 서울에 늦게 도착해 오찬이 오후 6시에 끝나는 파행을 초래했다. 양국 정상의 합의가 착실하게 실천으로 옮겨져야 외교 결례를 둘러싼 논란도 잠재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