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인이 해외 인터넷쇼핑몰에서 직접 구매한 규모가 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데는 기자도 한몫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우유병, 옷, 장난감 등 유아용품을 해외 인터넷쇼핑몰에서 샀다. 한국 판매가보다 절반가량 싼 제품을 발견할 때면 알뜰쇼핑을 한다는 뿌듯함과 그동안 바가지를 썼다는 씁쓸함이 교차했다.
한국과 비교되는 건 가격만이 아니다. 간편한 구매 절차가 더 놀랍다. 회원 가입 없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한 뒤 e메일 주소, 신용카드 번호, 카드 유효기간 정도만 입력하면 된다. 호텔을 예약하거나 유료 애플리케이션을 살 때도 비슷하다.
한국 인터넷쇼핑몰을 이용하는 건 복잡하다. 외국과 달리 국내 대부분의 쇼핑몰은 결제에 앞서 ‘액티브엑스(ActiveX)’라는 프로그램 다운로드를 요구한다. 한꺼번에 두세 개씩 깔아야 할 때도 있다. 액티브엑스를 설치한 뒤에는 별도의 ‘안전결제’ 프로그램을 내려받아야 한다. 결제금액이 30만 원을 넘으면 공인인증서도 있어야 한다. 쇼핑몰마다 요구하는 액티브엑스 종류도 제각각이다.
많은 사람이 인터넷쇼핑을 할 때마다 “뭐 이렇게 많이 깔아야 해”라며 투덜댄다. 논란의 핵심은 액티브엑스다. 전자상거래 등에서 금융 결제 및 보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다. 컴퓨터 속도를 느리게 하고 각종 바이러스, 악성코드의 전파 통로로 악용된다. 보안을 위한 프로그램이 오히려 이용자를 ‘무장해제’시키는 셈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구동되기 때문에 크롬, 사파리 등의 웹브라우저에서는 이용할 수 없다. 전 세계 ‘웹 표준’과도 맞지 않다. 이 기술을 만든 마이크로소프트(MS)조차 문제점을 인정하고 대체기술 개발에 나섰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액티브엑스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상황이 이런데도 많은 국내 인터넷 회사는 액티브엑스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금융결제 방식을 승인하는 금융당국이 새 방식 도입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에야 액티브엑스가 필요 없는 결제방식을 처음 승인해 줬다.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10년 넘게 그럭저럭 굴러간 시스템을 바꾸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해외 인터넷을 접할 기회가 드문 상당수 이용자는 딱히 불만을 제기하지도 않는다.
워싱턴포스트(WP)는 7일자 기사에서 “디지털 혁명의 선두 국가 한국에서 시대에 뒤처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이 문제를 꼬집었다. “액티브엑스 설치창이 하도 많이 뜨다 보니 악성코드로 보이는 프로그램에도 별 의심 없이 ‘예’를 누른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한국의 인터넷 환경은 이제 불편하고 위험한 정도를 넘어 해외에서 기이하게 바라보는 수준이 됐다. 당국과 인터넷업계가 변화의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이 당신은 오늘도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체모를 프로그램을 ‘울며 겨자 먹기’로 설치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