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등골 브레이커’ 변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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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더군요. 찬 바람 좀 분다고 교복 위로 ‘등골 브레이커’를 걸친 아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한 벌에 수십만 원 하는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내놓은 ‘윈드브레이커’(방한용 점퍼)를 자기 돈 주고 산 친구들이 이리 많지는 않을 터.

자식이 유행에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등골이 휘도록 번 돈 내주셨을 부모님들 마음고생이 눈에 선합니다. 그래서 이름도 ‘등골 브레이커’입니다.

어느 시대나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드레스 코드가 있게 마련. 요즘 아이들이 선택한 건 왜 하필 등산 점퍼일까요. 누군가는 그 이유를 두고 “한국 교육이 산으로 가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 우스갯소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예전에는 한국 교육이 바다로 갔습니다. 우리에게 교복 문화를 전한 일본 교육 역시 마찬가지. 교복의 대명사는 세라복(セ―ラ―服), 즉 세일러복이었으니까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서는 ‘일본 교복 디자인 변천사’라는 그림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근대 교육을 시작하면서 각 여학교는 야가스리(矢병) 또는 하카마(袴) 같은 전통 의상을 교복으로 정했습니다. 여염집 딸내미는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이때 이 교복은 부와 개화의 상징이었고, 당연히 등골 브레이커였습니다.

여학교가 늘어나면서 각 학교는 가격을 낮출 수 있도록 대량 생산이 가능한 교복 디자인을 찾았습니다. 이때 일본은 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한 군국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해군복이 흔하면서도 멋진 디자인으로 손꼽혔습니다. 100년 넘게 교복을 만든 일본 업체 돈보(청령)에 따르면 1920년 교토(京都)에 있는 헤이안(平安) 여학원에서 처음으로 세일러복 원피스를 교복으로 채택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1930년대에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여학생들이 세일러복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교복 가격을 낮추는 데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교복에 신는 스타킹이 등골 브레이커가 됐습니다. 당시에는 나일론 소재를 발명하기 전이라 실크 스타킹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실크 스타킹은 귀한 제품. 1933년 동아일보 ‘부인란’에는 떨어진 스타킹을 다시 실크 실로 만드는 방법을 문의하는 독자의 소리가 소개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처음 세일러복을 아이들에게 입힌 인물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었습니다. 1845년 영국 왕립 해군에서 선물한 해군복을 에드워드 왕자에게 입혔던 거죠. 해군복을 납품하던 재단사 피터 톰슨이 이를 보고 군복을 손질해 어린이용 세일러복을 만들기 시작했고,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세일러복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빈 소년합창단이 세일러복을 단복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세일러복 자체가 아무나 입을 수 없던 등골 브레이커였던 겁니다.

지금 학부모님들은 교복 자율화 세대가 많으실 테니 옷 문제로 부모님하고 가장 많이 다툰 세대일 터. 그런데 그 시절 잡지 ‘하이틴’에서 추천한 옷차림 역시 해군 복장에 뿌리를 둔 머린룩(marine look)이었습니다. 목에 다들 손수건 한 번씩 매 보셨잖아요?

이번 주말에는 ‘젊음의 행진’을 같이 보고 깔깔대던 여고시절 단짝 친구에게 전화 한 통 걸어보세요. 시간이 맞는다면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reality)’가 흘러나오는 따뜻한 찻집에서 그 시절 이야기로 오래 수다를 떨어도 좋을 겁니다. 우리는 다를 줄 알았는데 아이들 옷차림을 두고 엄마보다 더한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다는 푸념도 섞어서 말입니다.

황규인 스포츠부 기자 kini@donga.com
#학교 교육#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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