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우리나라의 전체 기업소득은 약 100조 원이었다. 이후 연평균 10% 이상 성장해 지난해 말에는 약 300조 원이 됐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같이 잘나가는 기업 중심이긴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벌 만큼 벌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잘 나눠주지는 않았다. 같은 기간 가계임금의 연평균 상승률은 7%로 기업소득 상승률과는 3%포인트 이상의 차이가 난다. 배당도 짰다. 지난해 현금배당을 한 상장사들의 평균 시가배당률은 2.1%로 미국 홍콩 싱가포르 등 3%를 웃도는 나라들과 차이가 있다.
남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 투자로 다시 흘러갔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총투자율은 2008년과 2010년의 반짝 상승을 제외하고는 답보 내지는 내리막이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의 하향 추세는 심각하다. 올 2분기의 총투자율은 24.9%, 지난해 1분기의 29.7%에 비해 5%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기업들은 이 돈을 쌓아두고 있다. 그 결과 2000년 초 11% 정도였던 기업저축률이 지금은 20%로 거의 배가 됐다. 사내유보금도 따라서 쑥쑥 올라갔다. 45개 대기업집단의 사내유보금만 해도 313조 원이나 된다. 같은 기간 가계저축률은 14%에서 3.2%로 곤두박질쳤고 가계부채도 1000조 원대로 늘어나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쯤 되면 너나없이 기업에 대한 원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빚과 실업에 가슴앓이하는 가계는 물론이고 경기를 살려 일자리를 만들고 싶은 정치권이나 정부도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이 칼을 빼들었다.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물리자는 안이다. 2001년 폐지됐던 제도를 부활시키자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라도 투자를 하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세수 증대로 복지재원도 늘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업과 정부 여당이 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사내유보금은 회계상 그렇게 돼 있을 뿐, 실제로는 대부분 자산취득 같은 기업 활동에 쓰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과세된 이익에 다시 과세를 해서야 되겠느냐는 반박도 있다. 어느 쪽이 옳으냐를 따지기 전에 이들 모두에게 묻고 싶다. 특히 여야 정치권에 그렇다. 얼마나 깊은 고민 끝에 이런 안을 내놓았으며, 또 얼마나 깊은 고민 끝에 이를 반대하고 있는가.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소위 ‘과잉저축(savings glut)’ 문제는 온 세계의 고민이다. 지금도 5대 현금보유 글로벌기업(캐시 킹스·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파이저 시스코)이 보유한 ‘현금’만 해도 우리 돈으로 약 400조 원에 달한다. 과잉저축이 저금리를 부르고, 저금리가 자산버블 등으로 시장을 어지럽혔던 악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온 세계가 고민을 해도 쉽게 풀지 못하는 문제라는 뜻이다. 빠른 시장 변화와 기술 변화, 그리고 큰 폭의 등락을 거듭하는 원자재 가격 등 투자를 막는 위험이 산재해 있다. 우리의 경우 여기에 후진적 자본시장과 금융 관행,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력 공급 체계와 노동시장의 낮은 유연성 등 복잡한 문제들이 더해진다. 답이 단순할 리 없다.
이에 비해 정치권의 담론은 그동안 천박하기 짝이 없었다. ‘좌파 정부의 반기업 정서 때문에 투자가 안 되고’ ‘4대강이나 챙기는 삽질 정권이라 그렇고’ ‘탐욕스러운 재벌 때문에 안 되고’ 하는 수준이었다. 답도 천박했다. ‘정권만 바꾸면 되고’ ‘대통령이 재벌들을 불러 밥 한 그릇 먹으면 되고’ ‘규제나 세금으로 때려잡으면 되고’ 하는 식이었다.
사내유보금 과세안이 그런 천박한 담론의 연장이 아니길 바란다. 과세로 강제된 투자가 글로벌 환경 속에서 기업의 행태를 어떻게 바꿀지, 또 자금의 흐름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되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투자기업이 손실을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경제에도 플러스가 되도록 하는 방안들과 잘 연계돼 있기를 기대한다.
여권도 마찬가지. 천박한 담론의 연장에서 나온 반대가 아니길 기대한다. 지금 상정된 법안들 정도로는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 투자를 활성화시킬 다른 합리적인 복안을 한 묶음 더 가진 반대이기를 기대한다.
잘 알고 있다. 말도 안 되는 기대라는 것. 그러나 이런 기대라도 있어야 모두들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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