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는 지독한 애연가였다. 정조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선 지나칠 정도로 담배 예찬론을 편다. “화기(火氣)로 한담(寒痰)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다. …정치의 득과 실을 깊이 생각할 때 뒤엉켜서 요란한 마음을 맑은 거울로 비추어 요령을 잡게 하는 것도 그 힘이다.” 전국적으로 흡연 장려운동을 펴려고도 했다. “(담배를) 우리 강토의 백성에게 베풀어 혜택을 함께하고 효과를 확산시켜 천지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 한다.”
▷서양에서도 담배는 한때 멋과 지성의 상징이었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아마 사는 것과 담배 피우는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일 테지요”라고 답했다.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은 가죽 옷에 담배를 꼬나문 모습으로 반항아의 심벌이 됐다. 카우보이모자를 눌러쓰고 담배를 문 광고처럼 담배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도구가 됐다.
▷하지만 1954년 담배 연기에서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이 발견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바로 그해 미국의 폐암 환자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수십 종의 발암물질과 수천 종의 화학물질이 추가로 발견됐다. 1998년 미국의 담배회사들이 패소한 이래 흡연자들의 승소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1976년 담뱃갑에 건강 경고문을 넣기 시작한 이후 금연정책은 날로 강해지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의무적으로 금연거리를 지정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흡연자들은 지나친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고 단속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200여 년 전의 정조를 모셔올 수도 없고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철학을 논하던 프랑스 파리 카페에서도 이미 담배연기가 사라진 것을. 사르트르는 담배를 ‘파괴적 소유행위’라고 예찬했다. 그러나 흡연자들은 실내외를 막론하고 자신의 ‘철학적 행위’가 자칫 남의 건강을 해치는 ‘파괴적 약탈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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