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최근 야당이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을 포함해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점을 찾아준다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 사건 특검 실시와 국회의 국가정보원 개혁 특위 설치를 요구하는 데 대한 답변인 셈이다.
박 대통령의 특검 관련 발언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원론적인 수준이라는 판단과 ‘사실상 특검 수용 거부’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해석이 나왔다. 사실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특검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언급은 가(可), 불가(不可)에 대한 가이드라인 없이 여당의 판단에 모든 걸 맡기겠다는 의사표시로 볼 수도 있다. 국정원 개혁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개혁 방안이 국회에 곧 제출될 예정인 만큼 국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고 검토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국회 정상화를 전제로 야당의 국정원 개혁 특위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검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반면 민주당은 ‘특검 선행이 관건’이라며 애초의 요구를 고수했다. 정치의 본질은 타협이다. 여야가 실질적인 정치의 주체로서 상대를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야 꽉 막힌 정국을 타개할 길이 열린다. 박 대통령도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 마련 단계에서부터 야당이 우려하는 부분을 충분히 반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떤 선거에서도 (국가기관이) 정치 개입의 의혹을 받는 일이 없도록 공직 기강을 엄정하게 세워가겠다”는 다짐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박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안들과 내년 예산안의 조속한 통과를 국회에 당부했다. 정부는 외국인투자촉진법안은 2조3000억 원 규모의 투자와 1만4000여 명의 일자리, 관광진흥법안은 2조 원 규모의 투자와 4만7000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위한 법안들도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여야는 대선이 끝난 지 1년이 다 되도록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싼 공방으로 연장전을 치르고 있다. 민생은 뒷전으로 밀어냈고 새해 예산안 심사는 착수조차 못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준(準)예산을 편성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국가와 국민 여야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정답이 없다’고 평가절하하고 규탄대회까지 열면서 강경 대응하는 민주당을 보면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여야는 시각차 때문에 다투더라도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기는 법안들은 적기에 처리해야 한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여야 모두 지긋지긋한 대선 연장전을 끝내고 정치의 정상화, 국회의 정상화, 국정의 정상화를 위해 보다 생산적인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