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의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세부 내용을 찌라시(사설 정보지)에서 봤다고 주장한 신문 보도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구태여 동영상을 찾아본 것은 ‘설마’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기자들 앞에 선 그는 또렷이 ‘찌라시’라고 했다. 차기 대권을 꿈꾼다는 김 의원이 찌라시 뒤에 숨었다. ‘찌라시 출구전략’은 김 의원의 단독 작품이 아닐 것이다. 이 정권과 새누리당 특유의 집단적 ‘리걸 마인드(법률적 사고방식)’가 작동했을 개연성이 크다. 국민적 공감대나 정서는 아랑곳없이 법적, 절차적 문제만 빠져나가면 된다는 법조당(法曹黨)스러움 말이다.
현 정부에선 이런 ‘어리둥절 메시지’가 도처에 깔려 있다. 인사만 해도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숭례문 부실복구의 책임을 물어 변영섭 문화재청장을 경질했다. 국보1호 숭례문의 복구 과정에서 부실이 드러났으니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이뤄진 복구 과정에서 올해 3월 임명된 변 전 청장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아리송하다. 부실복구 파문 이후 대처가 부실했다면 그 행태를 공개해 대통령의 메시지를 분명히 알려야 했다.
이도저도 아니니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 정권 들어 별별 희한한 하극상이 속출했다. 기무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에게 대들고, 수사팀장이 검찰 지휘부를 정면으로 공격해도 국방부 장관, 법무부 장관 모두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제개편안이 발표된 뒤 나흘 만에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하는 초유의 상황에서도 경제부총리나 대통령경제수석 등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았다. 숭례문 복구가 이런 국정난맥상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시끄러운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자리에만 엄격한 임면권(任免權)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인사권자의 영(令)이 서겠는가.
이 정권의 정무 메시지는 해독 불능 수준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원내 정당을 공중분해하겠다면서 헌법재판소 심판청구 절차를 대통령 순방 중 뚝딱 해치웠다. 이를 두고 방심한 상대의 허를 찌른 손자병법급(級) 정무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가장 큰 혼돈은 정책 메시지다. 현 정부의 잡다한 정책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김밥천국’이 떠오른다. SNS 시인 하상욱은 김밥천국을 딱 두 마디로 정의했다.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김밥천국 한 매장의 메뉴판을 보니 음식 종류가 공기밥 빼고 89종이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라. 김밥천국 메뉴판 이상이다. 도무지 선택과 집중이 없다.
국정과제 140개는 이미 현 정부의 일상 과제다. 그건 국무총리에게 맡겨도 된다. 박 대통령은 개혁 과제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공공기관 개혁은 정권이 명운을 걸어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한 세제개편은 또 어떤가. 박정희 정권의 몰락에는 1977년 도입한 부가가치세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부가세 도입을 극찬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목숨과 바꾼 세금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공무원연금, 권력기관 개혁 등 역대 정권이 모두 실패한 개혁 과제가 산적하다.
인류 지성사(知性史)를 새로 쓴 찰스 다윈은 평생 22권의 책을 남겼다. 그중에는 ‘지렁이의 작용에 의한 토양의 형성’과 같은 논문도 있다. 하지만 인류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종의 기원’ 때문이다. 임기 1년차가 다 지나도록 ‘지렁이’를 붙잡고 전선(戰線)만 넓혀서는 곤란하다. 이 정권은 생각이 너무 많은 게 탈이다. 문제의식은 창대하나 해결방식은 미약한 ‘박근혜 패러독스’에 빠져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