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넘는다. 똑같은 방에서 똑같은방을 보며 똑같은 방과 함께 웃으며 담배 피우며 똑같은 책상 똑같은 의자 아아 얼마만이야? 벽에 걸린 거울도 똑같고 거울 보는 나도 똑같고 20년 20년 아니 백 년이다. 스탠드 재떨이도 똑같지. 이 방에서 이 방을 먹으며 똑같은 저녁이면 똑같은 방을 목욕시키고 똑같은 옷을 갈아입혔지. “그렇고말고요.” 방이 말하고 난 “잠자코 있어!” 소리친다. 이 방이 아프리카인지 모른다. 난 몰상식한 시가 좋다. 백년 동안 목마른 방에게 물 한 컵 주며 살았지.
개인 공간이 있는 직장에서 근무해온 남자가 퇴직하며 짐을 정리하는 풍경이 그려진다. 보따리를 싸면서 생각해 보니 20년이 넘었구나. 그 책상이 그 책상, 그 의자가 그 의자, 아, 여기 거울도 있었지. 그 거울이 그 거울, 거울도 똑같고 나도 똑같구나. 20년 넘게 똑같은 계단을 지나 똑같은 문을 열었지.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가구를 자주 바꾸고 아기자기하게 실내를 장식하며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화자의 방은 썰렁하다. 벽에 그림 한 점 걸리지 않은 관공서 사무실처럼. 화자는 자기 공간을 꾸미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인 거다. 이 공간은 시인의 내면, 시인세계라고 할 수도 있겠다. 기교도 없고(싫고) 꾸밈도 없는(꾸미기도 싫은), 그런 시, 그런 시인의 방. 참으로 오래 마음 편했던 방이지만 돌아보니 이 방, 이 방에서의 세월을 묘사하기도 싫구나. 얼마나 목마르게 살아온, 건조한 세계였던가! ‘백 년 동안 목마른 방에게’ 딸랑 ‘물 한 컵 주며 살았지.’ 하지만 그게 나다! 그 목마름이 내 즐거움이다. 난 몰상식한 시가 좋다!
시여, 건조함도 권태도 몰상식도 양분이 되고 ‘감치미’가 되누나. 주간지 ‘시사IN’에서 읽은 문정우의 서평 한 구절, “바른말만 늘어놓는 책을 보면 ‘글 쓰는 사람이 신비한 데가 없으면 하다못해 어두운 구석이라도 있어야지’ 하고 짜증을 내면서 덮어버리곤 한다”가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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