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은 그제 국회 본회의 비교섭단체대표 발언에서 “법무부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에서 쓰는 말이기 때문에 북한을 추종한다고 하나 그것은 뉴딜 시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도 쓰던 말”이라고 주장했다. 오 의원은 그러면서 “미국도 북한을 추종했다는 말이냐”고 따졌다.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통진당의 해산 심판을 청구하며 그 이유 중 하나로 통진당의 강령과 당헌이 김일성의 정치 노선인 ‘진보적 민주주의’를 명시한 데 따른 반박이다.
오 의원은 진보적 민주주의(Progressive Democracy)의 출처로 1930년대 뉴딜 정책을 펼친 미국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언급했지만 잘못 안 것이다. 그보다 20여 년 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진보적 민주주의란 말을 썼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공화당원으로 두 차례 대통령을 한 뒤 1912년 정계에 복귀했으나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하자 새 정당을 만들었다. 그 당의 이름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내세운 진보당(Progressive Party)이다. 진보당은 기업 집중 규제, 노동 재해 보상 등 공화당에 비해 진보적인 정책을 표방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공화당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였다.
오 의원 자신도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진보적 민주주의와 통진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공안 당국이 밝힌 RO(혁명조직) 녹취록에 따르면 홍순석 통진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은 진보적 민주주의의 출처를 ‘김일성 노작(勞作)’이라고 밝혔다. 홍 부위원장은 5월의 한 모임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는 그 뿌리가 있느냐. 사회주의를 에둘러서 얘기한 것 아니냐”는 참석자의 질문에 “진보적 민주주의의 어원(語源)이 어디로 가느냐면 수령님께서 (북한을) 건설할 때 ‘우리 사회는 진보적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라고 한 노작이 하나 있어”라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 북에서 ‘수령님’은 김일성, ‘장군님’은 김정일을 의미한다. 노작은 저서 담화 연설을 뜻한다.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2011년 통진당 창당 직전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RO 조직원의 대화에서 드러났듯 진보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비슷한 것이 아니라 김일성의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말한다.
통진당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는 ‘수령님’ ‘장군님’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쓰다가도 외부 사람들에게는 주사파가 아니라고 잡아뗀다. 국가보안법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오 의원도 억지로 미국 사례를 끌어대다 부정확하게 출처를 인용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오 의원의 발언은 통진당 사람들의 전형적인 둘러대기 물타기 전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