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1909년 만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계를 주무른 실력자였다. 초대 총리대신을 비롯해 네 차례나 총리를 지냈고 추밀원과 귀족원 의장도 역임했다. 일본제국헌법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현재 일본 중의원 중앙홀에는 역대 의원 중 세 명만의 동상이 서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이토다. 1963년부터 1984년까지 1000엔권 지폐에는 그의 초상(肖像)이 들어있었다.
▷상당수 일본인이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추앙하는 이토는 한국인들에게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과 가해(加害)의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다. 그는 1905년 특명전권대사로 우리 땅을 밟은 뒤 을사늑약을 강요해 외교권을 빼앗았다. 이어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내정에 대한 권한도 박탈했고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해 식민지로 삼은 것은 1910년이었지만 이토가 살아있을 때 사실상 나라를 빼앗긴 상태였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그제 “안중근은 범죄자”라며 폭언을 했다. 스가는 올해 6월 한중(韓中) 정상회담 논의에 따라 안 의사의 의거 현장인 하얼빈 역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는 움직임을 비난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스가의 발언이 나오자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는 “안중근 의사는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저명한 항일 인사”라며 “일본 군국주의가 저지른 역사적 범행을 일본은 직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일본인들이 이토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울분을 참을 수 없어 침략의 원흉을 응징하고 이국땅에서 숨져간 독립운동가에게 ‘범죄자’ 운운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식민 지배를 반성하거나 한국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나올 수 없는 ‘망언’이었다. 14년 전 도쿄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기 안에서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일본은 잘못된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새로 태어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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