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선희]新엥겔법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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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엥겔계수는 독일 통계학자 엥겔이 1857년 만들어낸 개념으로, 가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저소득 가계일수록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최근 한국의 경우 소득상위 20% 계층의 엥겔계수는 12% 수준이고, 하위 20%는 20% 정도다. 하지만 갈수록 단순히 엥겔계수만으로 계층을 분류하기가 어려워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소득의 상당 부분을 먹는 데 투자하는 이가 많다. 음식 해먹기 번거로워하는 싱글족, 맞벌이 부부가 늘어났고 건강에 좋은 먹을거리, 미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값비싼 유기농이나 수입품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먹는 게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이던 시대는 지났다. 특별히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요즘 사람들에게 먹는 건 하나의 문화이자 유행이다. 이들이 아낌없이 쓰는 식료품비에는 식료품 재료를 집에서 해먹는 것 외에도 문화생활, 여가 선용에 투자하는 비용까지 모두 합산돼 있다. 맛집을 탐색하고 답사하며 오랜 기다림 끝에 먹는 행위 자체는 이미 주말을 선용하는 현대적 유희의 한 방식이 됐다. 맛있는 것 찾아 먹는 것이 일종의 취미생활인 것이다.

실제로 LG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보고서에 따르면 ‘먹는 데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는 소비자 답변의 비율은 30대에서 47.8%, 40대에서 44.1%로 절반 가까이 됐다. 식비 줄이는 게 재테크의 출발점이라고 믿어온 기성세대(혹은 재무전문가)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겠지만 고급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한 끼를 즐기며 심신을 ‘힐링’하고, 현지 분위기를 살린 이국적 레스토랑에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에 맞먹는 활력을 얻는 이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런 문화적 변화는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백화점 식품관의 위상 변화가 좋은 예다. 과거에는 쇼핑을 하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들르는 곳이 푸드코트였지만 요즘 사람들은 식품관에 먹으러 온 김에 쇼핑도 같이 한다. 자연히 입맛, 보는 눈 높아진 요즘 소비자들을 잡기 위한 식품관 리모델링은 백화점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 중 하나가 됐다.

중견 식품기업들이 내놓는 브랜드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춘 로컬 맛집이 늘어나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백화점, 대형몰들은 이런 로컬 맛집들을 모시기 위한 전쟁을 벌인다. 입소문을 타고 여러 곳에 지점을 내면서 법인화되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식품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과감한 지출은 소득수준과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식문화 성숙일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허기 충족이 아니라 문화욕구 충족이라는 설명이다. 식품이 식품 그 이상인 시대, 엥겔법칙이 다시 쓰이고 있다.

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teller@donga.com
#엥겔계수#식료품비#취미생활#식품관#로컬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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