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물론 전세이고 그다지 큰 평수도 아니지만, 나는 독립 후 처음으로 ‘방’이 있는 아파트에 살게 됐다. 지금까지 나는 작은 원룸에서만 살아왔다. 그러니 방송국을 그만두고 혼자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원룸에서 원룸으로 출근해 다시 원룸으로 퇴근하는 생활을 해왔다. 한번은 급작스럽게 방문한 선배가 있음에도 그날까지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있어, “언니, 나 출근했다가 이따 저녁 먹으러 올게” 하고는 식탁에서 일어나 두 걸음 옮겨 창가 책상으로 출근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선배는 한참을 깔깔거렸다. “출근길 짧아서 너 참 좋겠다!”
그러니 이 작은 아파트로의 이사가 얼마나 좋던지. 거실 겸 서재에 특히 공을 들였다. 책장도 사고, 긴 책상도 사고, 꿈에 그리던 큰 화분도 샀다. 그리고 어느 날 거실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데, 살짝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큰 화분의 나뭇잎들이 살랑살랑. 아, 아파트는 맞바람이 분다! 원룸의 작은 창문과는 비교할 수가 없어! 행복했다. 책에서 눈을 떼 살랑이는 나뭇잎만 바라보고 있는데도 시간은 잘만 흘러갔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나의 이사에 대한 주변인들의 반응이 말이다. 이제 차만 바꾸면 되겠네(내 차는 15년 된 남들이 보기엔 똥차, 내가 보기엔 멀쩡하기만 한 차), 이제 돈 더 모아서 내 집 사야지(응? 꼭 집을 사야 돼?), 신랑은? 결혼은? 그 외에도 에어컨이 없네, 침대도 낡았으니 바꾸는 게 좋겠네, 심지어 방석 없니, 너희 집에? 사람들은 나에게 혹은 나의 집에 없는 것들을 어찌나 쏙쏙 잘들 찾아내는지, 이상하게 나는 지금 몹시 행복한데도 행복해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야, 너 이제 출근할 맛 나겠다. 서재도 따로 생기고!” 이렇게 말해 준 선배의 방문이 어찌나 반갑던지, 나는 선배를 앉혀 두고 한참이나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를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면 조금 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아니야 아니야, 너 아직 행복한 거 아니거든?’ 나의 행복을 부정당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며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고 싶은데, ‘그러다 너 뒤처진다. 넋 놓고 있지 마. 너한테 모자란 게 지금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자꾸만 더 더 앞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하나를 얻으면, 그 하나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둘을 생각하고, 그 둘을 위해서 쉼 없이 달리고, 그 다음엔 또 셋, 넷, 다섯…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그래서 차를 사면 집을, 집을 사면 더 큰 집을, 결혼을 하면 그 다음엔 아이, 아이를 낳으면 또 그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아이고, 갑자기 머리가 아파 온다. 그냥 서재 바닥에 벌렁 누워버렸다. 그리고 또 한참이나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을 바라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럼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느끼는 걸까?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쉼 없이 계속 더 나아가기만 해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이렇게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랑살랑 바람의 움직임만을 바라보며… 아 행복하다, 느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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