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를 기억하시죠? 2011년 10월 개봉한 영화가 530만 관객을 모으며 크게 흥행했죠. 그해 ‘최종병기 활’ ‘써니’에 이어 세 번째로 흥행한 한국 영화였어요. 저는 장돌뱅이 저소득층 아빠와 필리핀 출신 결혼이민 여성인 엄마를 둔 반항아인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죠. 덕분에 엄마도 스타가 됐어요. 제 엄마 역으로 나온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 엄마가 많이 힘들다고 하네요. 조국 필리핀이 태풍에 큰 상처를 입어 국회에서 지원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냈다가 일부 누리꾼의 악플에 시달리고 있어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가득한 덧글을 보며 그동안 다문화사회가 어느 정도 정착됐다고 믿었던 제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어요.
사람들이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를 표출하는 심리는 뭘까요?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분석해요. 한국 사람들은 보통 서구 백인에 대해서는 호의적이고 관대해요. 하지만 동남아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공격적입니다. 이는 서구인에 대한 열등의식을 동남아 사람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만회하려는 심리로 해석할 수 있어요. 자기보다 열등하게 보이는 이들을 핍박해 스스로를 높이려는 얕은 심리적 속임수로도 볼 수 있지요. 더구나 우리 엄마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 공격을 받는 것 같아요.
다문화사회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어요. 28일 개봉하는 미국 영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입니다. 영화는 흑인의 눈으로 본 미국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어요. 남부에서는 노예 제도가 여전하던 1920년대부터 버락 오바마가 흑인으로는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2008년까지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영화는 해리 트루먼부터 로널드 레이건까지 34년간 대통령 8명을 수발한 백악관 흑인 집사 유진 앨런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어요. 남부 목화농장에서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갖은 고생 끝에 백악관에 취직합니다. 안정된 생활을 누릴 즈음 대학에 들어간 큰아들이 흑인 인권 운동에 투신합니다. 아들은 식당, 버스, 화장실에서도 흑인과 유색인종의 자리가 나뉜 현실에 분노합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아들을 못마땅해하지만 결국 아들 편에 서 인권운동에 참여합니다. 영화를 보면 단지 피부색 때문에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올해 초 통계를 보면 국내 거주 외국인은 145만 명에 이르러요. 외국인 노동자는 52만 명, 결혼이민 여성은 15만 명입니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그들’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 있는 셈이죠. 우리 엄마에게 돌을 던지는 행동은 이 많은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겁니다. 이 땅의 수많은 다문화가정의 ‘완득이’에게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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