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형준]카레와 깍두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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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사례 1

동아일보 도쿄(東京)지사가 있는 빌딩의 구내식당.

“밥 이 정도면 되겠어요?”(배식 담당 아주머니, 일본에선 밥 인심이 후한 편이다.)

“밥은 그 정도면 됐는데요, 카레를 좀 더 주시면 안 될까요?”(기자)

“카레는 한 국자만큼만 줄 수 있습니다. 마음만 듬뿍 담을게요.”(아주머니)

#사례 2

도쿄 신바시(新橋) 역 인근 한국식당.

“한국 맛 물씬 나는 된장찌개 부탁합니다.”(기자)

“(기자가 먹는 모습을 보며) 한국의 맛이 나나요?”(한국인인 식당 주인)

“객지 생활 1년이 넘으니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먹으면 눈물이 빙그르 돕니다. 근데 눈물이 안 나네요.”(기자)

“(오징어가 섞인 깍두기를 내놓으며) 서비스입니다. 한국 맛이 날 겁니다.”(주인)

최근 기자가 경험한 일본 생활의 한 토막이다. 일본인은 원리원칙을 잘 지키는 편이다. 한국 구내식당 아주머니라면 분명 카레를 더 줬을 것이다. ‘융통성 없는’ 일본인과 이야기하다 보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반면 ‘메이드 인 저팬’에는 믿음이 간다. 일본이 제조업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국민성과도 연관이 클 것이다.

한국은 융통성이 많다. 가족과 떨어져 단신으로 부임한 기자의 처지를 알고 식당 주인은 무료로 ‘비밀 병기’를 내놓았다. 하지만 융통성이 너무 많으면 경우에 따라 ‘대충대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올해 7월 서울 노량진 상수도관 수몰사고,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등은 정해진 원칙을 지켰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몇 년 전 아사히신문 기자와 함께 책을 쓰고자 했다. 서로 상대방 국가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내용이었다. ‘왜 한국에선 팥빙수를 처음부터 섞어서 먹느냐’는 질문에 땀을 흘리며 답했다. 서로 문답하는 과정에서 신기한 걸 발견했다. 최종 결론은 예외 없이 깔때기처럼 하나로 모아진 것. 한국과 일본의 장점을 두루 갖추는 게 가장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과 다른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 묘하게 끌리는 법이다. ‘겨울연가’가 물꼬를 터 주자 일본에서 뜨겁게 한류 붐이 달아올랐던 것도 180도 다른 상대방에게서 매력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한일이 요즘 냉랭하다.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뿐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그렇다는 점이다. 최근 한 일본 지인이 “요즘 한국에 여행 가면 얻어맞는 것 아니냐”고 물어서 기자의 어안이 벙벙해진 일도 있다. 엔화 약세로 올해 10월까지 방일 외국인 수는 866만 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10월 기준 방일 한국인 수는 전년 동월 대비 감소했다.

동아일보는 최근 ‘한일 관계 이대로는 안 된다’ 시리즈를 게재했다. 정치권의 냉기가 양국 국민까지 얼어붙게 하는 현 상황을 심각히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래선 양국 젊은이들이 상대 국가에 대한 매력을 체감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잃을지도 모른다.

한일 전문가 4인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와 안보를 분리 대응하자고 요구했다. 그리고 양국 정상이 만나 선순환 구조를 빨리 만들 것을 호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 지도자의 역사 인식에 대해선 강력하게 대응하되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유화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말로만 “정상회담을 희망한다”고 할 게 아니라 환경 조성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 주면 어떨까. 두 정상이 반보씩만 물러서면 된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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