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회사무처는 일본 미국 독일에 비해 우리나라 국회의원 세비가 적다고 발표했다. 우리 세비가 결코 많지 않은데 비교하는 나라나 계산 방법이 잘못되어서 국회가 무분별하게 비판을 받아 매우 억울하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사무처의 주장은 한마디로 교묘한 숫자 놀음이다.
우선 사무처가 계산한 우리 국회의원 세비는 1억3796만 원이지만 회기 중 특수 활동비를 더하면 1억4000만 원이 훨씬 넘는다. 이렇게 계산하면 독일보다 많아진다. 우리 것을 계산할 때는 빼고, 다른 나라 것을 계산할 때는 더한 것이니 이게 숫자 놀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 환율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세비 계산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유로당 1490원 대신 1430원을 적용하면 독일이 우리보다 적어진다. 1인당 국민소득을 고려하지 않고 세비만 단순 비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국민소득이 독일 프랑스 영국보다 낮지만 국회의원 세비가 이 나라들보다 높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나? 국민소득에 비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과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 아닌가.
국회의원들의 효율적인 의정 활동을 위해 세비를 포함해 지원제도를 충분히 마련하는 것을 부정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아직도 국회에 기대하는 바가 크고, 민주주의가 심화되려면 입법부의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이 세비를 비롯해 국회의원들의 다양한 특권에 분노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국회 모습을 보면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를 감히 꺼낼 수가 없다. 여야의 정쟁으로 8월 말에 끝내도록 되어 있는 결산 심의마저 마치지 못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 등을 둘러싸고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바람에 국민의 민생 관련 법안들이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12월 초까지 내년도 예산을 확정해야 하는데 아직 심의조차 못 하고 있으니 졸속 예산 심의는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지난 대선에서 여야가 경쟁적으로 약속한 국회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 약속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으니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기만 하고 있다.
의원들이 너무 많은 특권을 향유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려면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세비를 인상하기 전에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세비 책정 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세비 인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외부 인사들의 동의를 얻어 수당, 활동비, 휴가비 등을 인상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영국도 2009년 하원의원의 주택수당 부당 청구 스캔들이 발생한 후 의원에게 지급되는 경비와 급여 등을 결정하는 독립적 기구(Independent Parliamentary Standards Authority)를 설치했다.
둘째, 의원 개개인에게 제공되는 개인 보좌진을 축소하는 대신에 국회 상임위원회별로 보좌진을 풀로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국회의원들은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9급 비서 각 1명, 인턴 2명 등 모두 9명의 입법 보좌진이 있고, 그 경비가 연간 1인당 4억 원이 넘는다. 지역구 의원들은 보좌진 중에서 1, 2명 이상을 의정 활동 대신 자기 선거구에 보내 의원 개인 활동을 시키고 있다. 본래 의정 활동 보좌진은 의원 개인의 선거활동을 시켜서는 안 된다. 미국에서는 의원 보좌진이 선거운동을 하려면 보좌직을 사임하게 되어 있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너무 특권이 많다. 이걸 고치지 않고는 선진 국회로 발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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