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인 고독을 에로틱하게 표현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고독과 에로티시즘이라니, 언뜻 생각해도 두 단어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데다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젊고 섹시한 미녀가 개를 품에 안고 있는 이 그림은 에로티시즘이 고독을 전달하는 뛰어난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여자의 진한 화장, 쇄골이 드러난 어깨, 벌거벗은 하체는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한다. 그런데도 성적 충동을 가로막는, 지독한 외로움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기(寒氣)가 느껴진다. 젊은 여자가 유혹적인 자세를 취하는데도 왜 쓸쓸하게 느껴지는 걸까?
*배경에 실내공간을 장식하는 가구나 물건을 그리지 않았다.
*여자를 편안한 고급 소파가 아닌 딱딱한 사각형의 좁은 의자에 앉게 했다.
*여자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병든 반려견을 두 팔로 안고 있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되어 강렬한 고독을 전달하는 것이다.
루이제 린저의 소설 ‘삶의 한가운데’의 여주인공 니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슈타인 박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왜냐하면 마음을 쏟아버리고 나면 우리는 이전보다 더 비참하고 두 배나 더 고독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속을 드러내 보이면 보일수록 타인과 더욱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게 하지만 고독을 덜어줄 수는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에로틱한 고독’을 표현한 안창홍의 그림은 그 점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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