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과 실력 앞에 차별은 없다” “여자라고 특별대우 기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7일 03시 00분


[新 여성시대]3부<下>일하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뉴욕타임스 편집장을 지낸 노라 에프론은 여기자가 거의 없던 1962년에 언론사에 입사했다. 비슷한 조건이라도 남자는 기자, 여자는 우편담당 아가씨로 고용되던 시절이었다.

그는 저서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에서 기자가 막 됐을 때 봤던 남자들로 가득 찬 기자실 풍경을 ‘동물원’이라고 표현한다. 모두가 담배를 피웠지만 재떨이는 없었고, 책상에는 그을음이 가득했다. 창문은 한 번도 닦지 않아 몹시 불결했다. 심지어 에디터는 호색한, 경영 담당자는 사이코로 보였다. 때로는 직원의 반 이상은 만취 상태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에프론은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싶진 않았다”고 회상한다. 그는 자신이 속한 회사와 일을 사랑했고, 일터야말로 가장 흥미진진하고 가능성이 풍부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일에 몰입했고, 명성을 쌓으며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한국 기업은 에프론이 말한 ‘동물원’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특히 위로 갈수록 남성이 대부분이다. 남성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아직까지는 소수자인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일단 남성들과 조화롭게 일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남성들 틈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제10회 차세대 여성리더 콘퍼런스에 참석한 사단법인 WIN(Women in Innovation)의 여성 멘토들에게서 들은 조언은 이랬다.

상사에게 필요한 부하가 되라

남자 상사에게는 함께 일하고 싶은 직원, 부하 직원에게는 따르고 싶은 상사가 되려면? 멘토들은 남자건 여자건 일단 실력을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브랜드컨설팅 회사인 U&Company의 유재하 대표(53)는 “업무에서 성과를 내니 남자 후배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따르더라”고 했다. 그가 일할 때만 해도 프레젠테이션은 남자들이 맡는 게 일반적이었다.

유 대표는 자신에게 온 흔치 않은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 20년 넘게 하루 4시간 정도만 자면서 프레젠테이션을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른 형태로 잘할 수 있을까를 연구한 것이다. 그는 “늘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 잔 다르크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나와 함께 일하면 일이 성사되니 상사들도 나를 조직에서 내보내지 않았다”며 “왜 상사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를 불평하기 이전에 상사에게 정말 필요한 부하가 되라”고 조언했다. 상사들도 자신의 조직이 성과를 내야 자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일 잘하는 부하는 남녀불문 데리고 있으려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희숙 보랄석고보드 부사장(51)도 “어떤 업무가 맡겨지더라도 반드시 성과를 낸다는 신뢰를 상사와 부하 직원 모두에게 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의 전공 분야는 주로 재무 파트였다고 한다. 그는 “숫자가 재무의 생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절대 오류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필요한 정보는 꼭 제때 보고하고,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는 상사가 의심이 들지 않도록 명확하게 처리했다.

갈등 있다면, 내 문제는 없을까

홍종희 로레알코리아 이사(40)는 “말을 할 때 내 입장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맞춤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선 경청을 잘해야 한다. 이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조직생활의 기본에 관한 문제”라고 조언했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자신이 1분 말하면 상대방이 3분을 말하게 하는 원칙을 속으로 정했다고 한다. 상대방의 요구를 완벽하게 파악한 뒤에라야 메시지를 잘 전달받기 때문이다. 홍 이사는 “사람마다 이해관계는 극과 극으로 다를 수 있다”며 “가능하면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한 뒤 거기에 맞춰서 이야기를 진행해야 일이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남자 직원들과 갈등이 있다면 혹시 자신의 소통방법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상사의 지적사항에 대해 철저히 숙지하고 고치는 것도 필수다. 기업컨설팅 회사 얼라인드㈜의 이영숙 대표(53)는 과거 외국계 전자제품 회사에서 부장으로 승진했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이 대표는 승진은 빨리 했지만 새로운 분야를 맡았기에 실수를 종종 했다. 독일인이었던 남자 상사는 그가 처음 업무를 맡았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실수할 때마다 매번 호되게 야단을 쳤다. 이 대표는 “상사가 지적해준 부분을 고치면 지적한 것 외에 ‘다른 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 다시 나왔다.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당혹스러웠고 이런 상사를 도대체 어떻게 다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결국 “상사의 질문 패턴을 연구했다. 내가 상사라면 이 질문 다음에 무엇을 물을까 고민하며 이에 따라 여러 업무처리 방안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상사가 묻기 전에 먼저 “이 일이 끝나면 다음 일은 어떻게 해 보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는 것. 그러자 상사는 마침내 만족했고 갈등도 해결됐다.

술 안 먹어도 된다

남성들은 잦은 술자리와 담배 등으로 끈끈한 네트워크를 쌓으며 동료애를 유지하곤 하지만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멘토들은 굳이 술자리를 자주 가지지 않더라도 남성과 소통할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개발하라고 말한다.

한정아 한국IBM 상무(50)는 자신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커피를 한잔 들고 남자들이 모여 있는 흡연장소로 가서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또 상사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를테면 회식 자리에 갔을 때 직원들이 상사 옆 자리를 비워놓으면 “아니 누가 이렇게 좋은 자릴 남겨놓았느냐. 내가 앉을 수 있어서 영광”이라며 나서서 앉곤 했다는 것. 회의 때도 뒤에 앉지 않고 상사 바로 옆에 가서 앉았다. 남들이 뭐라 하건 자신이 일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렸다는 것이다.

로레알코리아 홍종희 이사가 가진 자신만의 소통 노하우는 ‘문자 혹은 e메일 서비스’. 아침마다 일간지를 정독한다는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오늘 기사 잘 봤습니다. 응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외부 행사에 가서 한 번이라도 인사한 사람들에게도 종종 좋은 자료나 기사가 있으면 링크를 보내 공유한다.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하는 활동에 내가 관심이 있다는 걸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최신애 한국리서치 부사장(56)은 회의 시작 전에 미리 참석자들의 의견을 꼭 들어보는 습관이 있다. 회의 참석자들의 생각이 뭔지 우선 파악한 뒤 회의 결과를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 미리 방향을 잡을 수 있어서다.

그는 “미리 나부터 각자의 입장을 이해한 뒤 회의석상에서 서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정하려 한다”고 노하우를 전했다.

공짜는 없다

아직도 회사에서는 중요한 업무를 맡길 때 “여자인데 괜찮겠어? 할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이라고 차별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멘토들은 일단 나부터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보랄석고보드 이희숙 부사장은 “여성들은 성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본인 스스로 만드는 측면도 있다”며 “난 여자니까 으레 남자 직원들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여성이란 이유로 시댁 제사에 가야 하고, 아이를 꼭 보러 가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남자들로부터 우대받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이다.

멘토들은 “여자들은 흔히 징징댄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여성이 철저하게 프로의식을 갖고 업무에 올인할 때 회사에서도 여성의 가치를 알아본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강란 피자헛 상무(49)는 “회사에선 오로지 회사만 생각했다. 심지어 때로는 퇴근한 뒤에도 일을 생각할 정도로 조직에 헌신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썼다”면서 “결국 주변 동료들도 이런 책임감을 인정해줬다”고 말한다.

이런 노력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는 이전 직장에 다닐 때 2006년 아이를 말레이시아에 유학을 보내면서 함께 따라갈까 하는 생각에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상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루에 4시간 정도만 파트타임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재직 상태를 유지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1년 뒤엔 다시 복직시켜주겠다는 제안도 함께였다. 덕분에 그는 1년 반 동안 아이에게 삼시 세 끼 밥을 해주면서 재택근무를 했고, 이후 회사에 무사히 복귀했다. 그는 “일에 철저하게 헌신하는 여자들에게 차별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샘물 교육복지부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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