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공산권 몰락에 공헌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하느님 없는 나라 건설” 비판
김일성 주체교 偶像 가득한 北… 신앙의 자유도 없는 나라
주민 인권 유린하는 정권 옹호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라는 예수의 가르침 위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년)는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주의 몰락에 결정적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무력이나 제재가 아니라 가톨릭 신앙이라는 소프트 파워로 공산독재 체제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교황 취임 다음 해인 1979년 폴란드를 방문한 그는 바르샤바 공항에 내려 무릎을 꿇고 조국의 땅에 키스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폴란드인들은 교황에 열광했다.
교황은 가는 곳마다 집결한 수백만 명의 군중을 향해 “두려워 말라”고 용기를 북돋웠다. 그의 방문은 레흐 바웬사의 자유노조연대 설립으로 이어졌다. 바티칸 은행은 은밀하게 자유노조의 재정을 지원했다. 폴란드 공산정부는 바웬사를 구금하고 탄압하다가 경제사정이 악화하고 정정이 불안해지자 마침내 굴복해 1989년 바웬사와 협상을 벌여 자유선거를 실시했다. 선거에서 자유노조가 압승을 거두었다. 폴란드를 시작으로 불가리아 헝가리 동독 등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이 차례차례 붕괴했다. 1989년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바티칸에서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났을 때 교황이 “나는 공산주의에 대해 매우매우 비판적”이라는 말을 했다고 회고했다. 교황이 없었더라도 동유럽 공산주의는 언젠가 무너졌겠지만 시간이 훨씬 더 걸렸을지 모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의 독재정권을 적대시했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연결된 해방신학과는 명백히 선을 그었다. 남아메리카의 니카라과에서는 해방신학 계열의 사제들이 총칼을 들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에 가담해 부패무능한 군사정권을 무너뜨렸다. 이 공로로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는 문화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1983년 니카라과를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앞에 카르데날 장관은 무릎을 꿇고 손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 교황은 이를 뿌리치면서 “교회와 당신 직분의 관계를 똑바로 하시오”라고 호통쳤다. 가톨릭 사제가 마르크스레닌주의 정권과는 어떤 명분으로도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교황은 ‘하느님이 없는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공산주의의 논리는 환상이라고 비판한 적도 있다.
가톨릭은 독재정치에 신음하던 필리핀을 비롯한 제3세계 국가에서 민주화와 인권신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한국에서도 고 김수환 추기경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은 민주화로 가는 고통스럽고 긴 여정에서 소중한 원군이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에서는 가톨릭 신부들이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미국의 작가이자 신부인 토마스 리스는 “가톨릭 사제는 현실 정치에 관해서 겸손하게 말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현실 정치는 사제의 전문영역 밖에 있습니다. 그들은 신도들에게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투표해야 한다고 말할 권위가 없습니다.” 미국 주교회의는 신부들에게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특정 정당에 대한 대중의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정구사(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집권이 역사의 필연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국가정보원 댓글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승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부 신부들에게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 서울시청에서 MB(이명박 전 대통령) 심부름이나 하던 비전문가가 국정원장이란 중책을 맡더니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다. MB는 정운찬 김태호 이재오 김문수 오세훈으로 후계구도를 방황하다가 막판에 어쩔 수 없이 박근혜로 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뒤늦게나마 박 후보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댓글을 덥석 물었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제들이 나설 때가 아니라 사법부의 판결을 지켜보면서 국정원이 다시는 이런 짓을 못하도록 책임을 묻고 수술을 할 일이다.
신약성서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예수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성령이 내게 임했다”고 말했다. 이 시대 사제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바로 예수의 정신에 따라 불의와 억압의 희생자들에게 자유와 인권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김일성, 정일, 정은으로 이어지면서 주민을 굶겨 죽이고 기본권을 유린하는 북한은 바오로 2세 교황과 바웬사가 무너뜨린 폴란드 공산정권보다 몇십 배 악독한 집단이다. 북한에는 신앙의 자유도 없고, 김일성 주체교의 우상(偶像)만 온 천지에 가득하다. 3대 세습 정권의 폭정에 신음하는 주민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 시대 가톨릭 사제의 소명일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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