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생일선물을 고를 때 ‘아내와 같은 나이에 같은 지역에 살고, 학력과 생활수준이 비슷한 여자들이 평소에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상적인 부부라면 평소 알고 있는 아내의 취향에 맞춰 깜짝 선물을 준비하거나, 원하는 선물을 물어보는 게 일반적이다.
얼마 전에 미국 IBM이 발표한 ‘고객에 의해 움직이는 기업(The Customer-activated Enterprise)’ 보고서는 미래 기업이 이처럼 고객을 그룹별로 분류하지 않고 개인별로 인식해 대응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나이, 성별, 학력, 거주지역, 생활수준 등 그룹 단위로 소비자를 나눠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 모델은 더이상 통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이런 변화는 개인 모바일 기기의 등장과 빅데이터 분석과 같은 기술 혁신 덕분에 생겨났다. 수많은 소비자 개인의 목소리를 듣고 해법을 내놓는 일이 이제는 가능해진 것이다.
삼성전자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제조사이지만 정작 그걸 사서 쓰는 사람에 대해선 잘 모른다. 삼성의 고객을 잘 아는 건 스마트폰 운영체계(OS)를 제공하는 구글이다. 구글은 G메일 사용자의 검색어 분석과 위치 추적을 통해 스마트폰 이용자가 무엇에 관심 있는지, 평일과 주말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낸다. 누군가가 자살을 생각한다면 그걸 제일 먼저 눈치 채는 것은 주변의 가족도, 친구도 아닌 바다 건너 구글일 수 있다.
엄청난 정보 수집은 정보주권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기업경영 면에선 혁신을 가져온다. 소비자 개개인의 생각을 읽는 구글은 맞춤형 광고로 연간 50조 원의 돈을 번다. 제조업체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위협은 더욱 커졌다. 스마트 워치, 스마트 안경 등 여러 아이디어가 경합하고 있는 차세대 스마트폰 시장에선 누가 지배자의 자리에 오를 것인가. 고객을 잘 아는 구글이 주인공으로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다.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키우는 데 사운(社運)을 걸고 매달리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이를 통해 콘텐츠 및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객과 접촉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위기감을 삼성은 느끼고 있다.
고객을 알고 싶다는 열망은 글로벌 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SK텔레콤이 빅데이터 기법으로 자사 가입자 2700만 명의 지역별 유동인구와 소비패턴을 분석한 자료를 2011년 내놓자 지역 상인들과 중소기업 등이 수만 건을 내려 받아 사용하는 등 고객 서비스 혁신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기업과 상인들은 이렇게 고객 하나하나에 맞춰 혁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국민경제를 지원해야 할 정치권은 ‘정치 서비스의 고객’인 이들의 사정엔 무관심해 보인다. 경제를 살리자는 법안이 몇 개월째 줄을 서 있는데 정쟁에만 몰두한다. 이런 상황을 탤런트 신구 선생이 본다면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니들이 고객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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