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신부의 23일 문제 강론은 전문을 읽어보면 더 기가 막힌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이 따로 없다. 북한에 엄격한 보수정권에 대한 적개심이 묻어난다. 정권교체를 못한 데 대한 원통함도 녹아 있다. 왜 ‘대통령 사퇴’를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리는지 짐작이 간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비단 박 신부뿐일까.
우리 사회는 노동자 농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빨갱이 또는 종북주의자로 취급한다고 박 신부는 말했다. 그 이유가 그들이 하는 일이 노동자 농민 중심의 정책을 펴는 북한과 닮았기 때문이란다. 누가 노동자운동 농민운동 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종북주의자로 모나. 설혹 그렇다 쳐도 그들의 행위가 북한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건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노동자 농민을 위하기는커녕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북한을 노동자 농민 중심의 나라라고 하는 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인가.
박 신부는 독도에서 군사훈련 하는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며 “NLL(서해 북방한계선)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군사훈련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하겠어요? 쏴야지”라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연평도 포격 사건이라고 했다. 북한이 우기는 것처럼 NLL 이남의 일정 해역이 북한 것이라고 전제해야 할 수 있는 주장이다. NLL의 역사를 제대로 안다면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을 적으로 만들어 종북 문제로 백성을 치기 위해 조작한 것처럼 묘사했다. 국제적 전문적 검증을 외면한 채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진실이라고 말하는 대담함이 놀랍다.
박 신부는 지난 대선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외에도 컴퓨터 개표 조작 같은 엄청난 부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지금 이 나라가 온전하겠는가. ‘개표 부정 입증 자료를 제출하라’는 중앙선관위의 요구에 그가 뭐라 답변할지 궁금하다. 종교인이라고 무책임한 발언을 남발해도 되는 특권을 가진 건 아니다.
윤재만 대구대 법대 교수는 25일 카카오톡 공개토론방에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에 부역한 탈북자 놈들은 나치에 부역한 자들을 사형시킨 프랑스처럼 전원 사형에 처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학문을 하는 교수의 언어가 아니다. 무슨 억하심정에서 탈북자들을 향해 이런 험한 말을 했는지 궁금했는데 해명도 황당하다. “이제까지 나타난 증거만으로도 명백한 대선 부정이다. 이를 감추기 위해 부정을 규탄하는 사람들을 종북으로 모는 자들은 탈북자이건 아니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아직 1심 재판도 끝나지 않은 사건을 두고 유죄로 단정하는 게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법학자의 합리적 판단인가.
법륜 스님은 25일 어느 북콘서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나는 시킨 적이 없으니 사과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일본의 아베 총리가 ‘나는 한국 침략에 대해 지시한 적이 없으니 사과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힐난했다. 개인 또는 조직의 불법행위와 승계되는 국가 차원의 침략범죄를 동일시할 수 있는가. 아직 유죄로 확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또 어떤가. 박 대통령이 (나중에도) 사과하지 않겠다고 밝힌 적이 있는가.
숱한 사회적 갈등의 고비마다 우리는 합리적 주장보다 비(非)합리적 선동이 판치는 것을 지겹도록 보았다. 또 그런 세상이 온 것인가.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윤재만 교수 반론보도문>
본지는 지난해 11월 30일 "혹세무민, 또 그런 세상이 온 건가" 제하의 칼럼에서 윤재만 대구대 법대 교수의 탈북자 관련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대화방에 근무하듯이 상주하면서 지나치게 반민족적 친일과 독재, 공직선거법 위반행위 등을 옹호하는 일부
탈북자들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파괴행위를 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을 뿐 전체 탈북자들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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