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이거나 아버지이거나 누이들이기도 했다 누운 채로 생각이 스며 자꾸 허리가 휜다는 사실을 들킨 밤에도 얼른 자, 얼른 자
그 바람에 더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좁은 별들이 내 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얼른 자, 얼른 자
그 밤, 가끔은 호수가 사라지기도 하였다 터져 펄럭이던 살들을 꿰맨 것인지 금이 갈 것처럼 팽팽한 하늘이기도 하였다
섬광이거나 무릇 근심이거나 떨어지면 받칠 접시를 옆에 두고 지금은 헛되이 눕기도 한다 새 한 마리처럼 새 한 마리처럼 이런 환청이 내려앉기도 한다
자고 일어나면 개벽을 할 거야
개벽한다는 말이 혀처럼 귀를 핥으니 더 잠들 수 없는 밤 조금 울기 위해 잠시만 전깃불을 끄기도 한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표정. 아이 같은 얼굴에 세월의 훈장인 양 굵은 주름을 이마에 새긴 후줄근한 중년 남자들. 그제 서울 도심 화랑에 들어섰을 때 마주친 조각가 박진성 씨의 인물조각들이 그랬다. 팍팍한 현실에서 강펀치를 맞았는지 ‘눈탱이 밤탱이’ 상태로 허탈하게 웃음 짓는 아저씨가 있고, 수저 꽂은 소주병 들고 신나게 노래 한 곡 뽑는 아저씨의 눈가에 물기가 주렁주렁 맺혀 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자락이 딱 들어맞는 표정들이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었으나 이름 없는 현대인의 상처투성이 속내로도 보인다. 뺨이 온통 눈물로 얼룩진 아저씨를 똑같이 생긴 아저씨가 얼싸안거나 어루만지는 모습도 있다. 박 씨의 ‘괜찮다 괜찮다’ 시리즈다. 생의 아픔과 쓸쓸함으로 담금질 받으면서도 스스로를 다독이고 서로를 위로하며 사는 이들에게 내민 따스한 손길에서 이병률 시인의 ‘새날’이 떠올라 포개졌다. 인생이라는 ‘고통의 학교’에 머무는 동안 하루하루 자신을 토닥이며 새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작품이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라는 말처럼, 언젠가 시인은 비온 뒤에 해뜰 거라는 말,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말, 슬픔도 가끔은 희망이 된다는 말, 네가 있어 힘이 된다는 말이 살아가면서 ‘우리가 익어가는 데 힘찬 재료가 되는 말’이라고 썼다.
11월의 마지막 하루를 여는 아침이다. 막막하고 나아지는 느낌도 없는데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올해 생애 최고의 업적을 이룬 골프선수 박인비는 ‘LPGA 올해의 선수’ 시상식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 초 내 목표는 간단했다. 지난해보다 행복해지자였다.” 그는 기록 대신 행복을 ‘더 높은 목표’로 삼았기에 투어를 즐길 수 있었고 좋은 성적도 낼 수 있었다고 들려준다. 박 선수와 꼭 같지는 않더라도 누구나 저마다의 몫만큼 위태로운 고비를 넘겼고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얻은 것도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일로 자신을 들볶기보다 분투한 날을 떠올리는 하루, 부족한 나를 탓하기보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보듬는 하루. 오늘 그렇게 쉼표를 찍고 새날을 맞고 싶다. 12월의 첫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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