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세는 뭘까.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도, 깜찍한 외모로 시청자를 홀린 ‘추블리’ 추사랑도 아니다. 디지털 가상화폐 ‘비트코인’이다. 2009년 초에 등장한 비트코인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보기술(IT)이나 금융에 해박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으로 용처가 늘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등이 순기능을 인정하면서 지난해 말 13.5달러(약 1만4200원)에 불과하던 단위당 가격이 무려 1200달러(약 127만 원)를 돌파했다. 너도나도 ‘비트코인을 잘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사야 하느냐’며 아우성이다.
이런 열풍은 영국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이 말한 전형적인 ‘군집행동(herd behavior)’에 가깝다. 군집행동은 타인의 행동을 자신의 의사결정 기준으로 삼는 현상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상품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고 ‘이익이 날 테니 저 사람이 사는 거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따라하는 식이다. 많은 사람이 사니 가격은 더 오르고 오른 가격은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은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아이디어 도용 소송을 벌여 6500만 달러의 천문학적 합의금을 타낸 유명 벤처투자자 캐머런·타일러 윙클보스 형제의 대량 매집은 비트코인 초기 열풍의 원동력이었다.
안타깝게도 비트코인 열풍의 진정한 의미와 시사점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100% 익명 거래가 가능한 편의성, 싼 송금수수료, 발행량 제한 설계로 인한 높은 희소가치 등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존 화폐 및 각국 중앙은행에 대한 불신이다. 즉, 2008년 금융위기를 예방하지 못했고 위기 뒤에도 돈만 찍어냈을 뿐 사태를 잘 수습하지 못한 각국 금융당국에 대해 ‘당신들을 믿을 수 없다’며 대중이 보내는 엄중한 ‘경고’가 깔려 있다.
비트코인이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사재기처럼 한때의 거품으로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과 금융당국이 신뢰를 상실한다면 제도권 화폐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제2, 제3의 비트코인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 금융권의 대비는 너무 소홀하다. 한국 내 비트코인 거래량에 대한 변변한 보고서 하나 없고 가상화폐가 한국 금융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제대로 분석하는 금융회사도 보기 힘들다.
연말을 맞아 금융지주 회장 및 은행장들이 소외계층을 위한 김장에 나서는 소식이 잇따른다. 좋은 일이지만 굳이 회장이 ‘행차’하지 않고 다른 임원이 해도 충분한 행사다. 그 대신 한국은행 총재나 금융지주 회장이 비트코인 ‘채굴(mining)’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비트코인 획득 여부는 중요치 않다. 진짜 중요한 건 금융계 수장(首長)이 비트코인 현상 이면에 있는 현 금융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누그러뜨리고 한국 경제와 금융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물론 ‘사진발’도 훨씬 잘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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