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한국은 국민소득 2만 달러로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인데 국가브랜드지수에서는 50개국 가운데 겨우 33위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세계가 한국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대통령의 실망은 커 보였다. 10대 경제대국 ‘나홀로 자부심’
이 대통령은 ‘말도 안 되는 평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보도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한국이 세계 인기도 경쟁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진짜 백조로 알아주기를 원하는 미운 오리 새끼라고 비꼬았다. 한국인들의 자아도취를 지적했다.
대통령뿐만 아니다. 많은 한국 사람은 세계가 자신들을 백조로 알아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럴 법도 하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경제기적을 이룬 한국인들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88올림픽을 치러내면서 세계 사람들이 다 한국을 알아보고 선진국으로 인정해 줄 것이라 믿었다. 월드컵 4강에 갔을 땐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된 것처럼 들떴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 국운이 상승한다며 감격했다. 세계 각국에 한류가 넘실되자 도대체 우리의 저력은 어디까지냐며 자부심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20년 앞서 올림픽을 치른 멕시코나 월드컵을 다섯 번이나 우승한 브라질이 여전히 중진국에 머물러 있으며 세계 최초로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2연패를 한 카타리나 비트를 낳은 동독이 국운 상승은커녕 몰락한 사실은 외면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올림픽을 열고 금메달을 따도 그런 것들만으로 한국이 세계가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한다.
세계적 브랜드 컨설팅회사인 ‘퓨처 브랜드’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2∼13년 국가브랜드지수’에서 한국은 118개국 가운데 49위에 그쳤다. 2011년 42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국가브랜드지수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실망은 더 커진다. 10대 경제대국이란 자부심이 무색해진다.
한 나라의 ‘가치체계’는 국가 성공의 기초이다. 어떤 나라든지 법의 지배가 존중되고, 정부기관 등이 신뢰받는 곳으로 인식될 때 그 나라의 브랜드는 발전한다. 스위스가 1위인 ‘가치체계’ 부문에서 한국은 25위에 들지 못했다. 국가브랜드지수는 이 부분을 다시 환경친화성, 언론자유, 정치적 자유, 법적 환경, 관용 등의 5개 세부항목으로 나뉘어 평가했다. 항목마다 15개 나라를 꼽았으나 어느 곳에도 한국은 없다.
‘삶의 질’은 교육체계, 의료체계, 고용기회, 안전, 대부분 살기 좋아하는 곳, 생활수준 등 6개 항목의 평가이다. 역시 스위스가 1위인 ‘삶의 질’ 부문 25위 내에 한국은 없다. 서울만큼 안전한 곳이 어디 있느냐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으나 안전 등 6개 항목 어디에도 한국의 자리는 없다. 자국민은 물론이고 해외 투자가들에게 튼튼하고 매력적인 기업환경을 제공하는 국가 능력을 평가한 ‘좋은 기업 환경’은 첨단기술, 투자풍토, 규제환경, 숙련된 노동력 등 5개 항목의 순위를 매겼다. ‘좋은 기업 환경’도 스위스가 1위이며 독일 일본 싱가포르가 뒤를 이었다. 첨단기술 부문엔 일본이 1위. 숙련된 노동력은 독일이 1위, 일본이 2위였다. 한국은 전체 25개국, 세부항목 15개국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 국가브랜드지수 49위 불과
‘유산과 문화’는 예술과 문화, 전통성, 역사, 자연미 등 4개 항목의 순위를 매겼다. 이탈리아가 전체 1위이면서 예술과 문화, 역사 등 두 항목에서 1위. 일본이 전통성에서 1위, 예술과 문화에서 3위이며 역사에서도 15개국 가운데 8위이다. 한국은 어느 부문에도 등수에 들지 못했다. 예술 등에서 어떻게 일본에게 상대도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나 세계는 냉정하다. ‘관광’은 돈을 치른 만큼 값어치가 있는 곳, 명소, 리조트와 숙박시설, 음식, 쇼핑, 해변, 밤 문화 등 7개 항목으로 나뉘어 평가했다. 한국은 전체 25위에는 포함되지 못했으나 쇼핑에서 13위를 차지했다. 전체 1위는 이탈리아이며 일본 프랑스 스위스 미국이 뒤를 이었다. 일본은 명소에서 1위, 음식 3위, 쇼핑 5위 등 5개 항목에 이름을 올렸다.
27개 항목중 순위권은 쇼핑뿐
‘미래의 선두국가’ 15개국엔 중국 베트남도 포함되었으나 한국은 없다. 6개 부문 27개 세부 항목에서 한국이 순위에 든 것은 ‘관광’ 부문의 쇼핑 1개뿐이다. 한국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일개 컨설팅 회사의 평가에 그리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대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이런 평가를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만큼 살기 편한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생각하는 국민이 상당수이다. 대한민국처럼 미국이나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가 없다고들 누구나 스스럼없이 얘기할 정도이다. 그러나 세계인들은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가 48개국이나 있다고 평가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며 자만에 빠진 것이 아닐까.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면 자부심은 곧 오만이 된다.
당장의 물질적 풍요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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