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좌담]‘숭례문 부실 복원’이 주는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6일 03시 00분


“工期에 급급한 원상복구,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건 아닌지”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일 본사 회의실에서 ‘숭례문 부실 복원이 주는 교훈’을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미디어연구소장, 고희경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성태 위원, 허문명 팀장,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일 본사 회의실에서 ‘숭례문 부실 복원이 주는 교훈’을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미디어연구소장, 고희경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성태 위원, 허문명 팀장,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5년 10개월 전 숭례문 화재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복잡했다. 무너져 내리는 국보를 보며 눈물을 삼켰고, 허술한 관리체계엔
울분을 터뜨렸다. 부실복원 논란을 바라보는 마음도 그래서 편치 않아 보인다. 균형 잡힌 보도를 위해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일
‘숭례문 부실복원이 주는 교훈’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

<참석자>

● 위원장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 위원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이형삼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김사중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 사회
박태서 미디어연구소장

―국보 1호 숭례문 화재도 안타까웠지만 부실했던 복원 과정도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관련 보도가 어떠했나를 따지기 전에 폭넓은 시각에서 숭례문 부실복원이 던진 메시지와 바람직한 언론 보도를 짚어 보고자 합니다.

이진강 위원장=숭례문에 한정해 단청이 잘못됐다, 서까래가 잘못됐다 이럴 것이 아니라 문화재 전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언론,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도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김성태 위원=문화재는 옳다 그르다가 아닌 접근의 문제입니다. 정치경제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문화자본’이란 용어를 많이 쓸 만큼 문화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감시의 기능이 언론의 의무이지만 지금은 사건사고식의 보도가 아닌 심층적인 보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고희경 위원=문화재의 핵심 의미는 ‘역사’인데, 국민의 시각은 현재 일어나는 사건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화재가 가진 시간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문화재의 상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한쪽으로 몰아가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문화재 복원은 정해진 기간이 있을 수 없는데 공사기한에 맞춰 서둘러 진행된 측면이 있습니다. 빨리빨리 속성 등의 분위기에 휩쓸려 언론도 제대로 지적을 못했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듭니다.

이 위원장=문화와 문화재는 인간의 삶과 같습니다. 문화재가 살아 있고 숨쉬고 있으니까 단청이 떨어지는 일도 발생하는 걸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문화와 문화재가 우리 삶 가운데 있다는 걸 국민께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시각을 들어 보도록 하죠.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월간 신동아에서 숭례문 부실복원을 다룬 기사에서 ‘문화재 정치학’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전통기법과 도구를 사용한 복원이라는 원칙이 정치적 고려 때문에 갈팡질팡한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충분히 건조해서 써야 했을 목재를 공사기한에 맞추느라 서둘러 사용한 면이 있습니다. 전통방식대로 망치, 정 등을 만들어 쓰느라 돌을 쪼고 나르는 작업엔 오히려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겁니다. 동파, 열파, 변색에 약한 전통기와를 고집한 점도 지적했습니다. 전통기와의 단점을 최소화한 ‘기계기와’도 넓은 뜻에선 우리 전통문화로 볼 수 있을 터인데 외면했습니다.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인터넷 반응은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복원에 사용한 목재나 안료 등 재료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며, 예정된 공사는 졸속으로 하지 말고 재료 검증과 제작, 실제 실험에 이르기까지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원 과정에 비리가 있다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엄정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최대한 전통기법에 따라 복구공사를 했다는데 과연 전통기법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문제점은 없었는지 꼼꼼히 검토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이 위원장=숭례문이 두 번 전소돼 복원된 적이 있습니다만 주변 환경과 교통, 여건, 공기 등을 놓고 보면 지금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지금 상황에 맞는 복원기법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위원=전통기법이 당시엔 첨단기법이었지만 더 오래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됐는데도 그것만 고집한다는 것은 논의해봐야 합니다. 문화가 삶이고 삶의 반영이라면 이 시대에 그걸 복원한다는 게 무엇인가, 숭례문 복원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이죠.

이 위원장=전통기법을 고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원형대로 복원하되 문화재가 갖고 있는 정신과 얼을 어떻게 담아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과 정신 없이 옛날과 똑같이 복원한다고 훌륭한 문화재는 아닙니다.

허문명 팀장=모든 일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복원해야 할지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과정도 복원과정이라고 봐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습니다. 유럽은 고미술 하나 복원하는 데 몇 십년씩 걸린다는데 우리는 문화재 복원이 이슈가 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번 숭례문이 처음일 겁니다. 문화재 보수 및 복원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종합적인 내용을 탐사보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 일을 보면서 문화재 전반을 제대로 짚어줄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 위원=외국인들은 종종 ‘대한민국은 공사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 국민 의식도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문화재를 보는 시각도 간밤에 일어난 사건사고로 인식하는 것에서 바뀌어야 합니다.

이 위원장=여러 건축물, 예술 등 문화의 생성에는 자율성과 창조성이 따릅니다. 그것이 나중에 멸실이 되고 손상이 돼 복원할 때도 자율성과 창조성을 기반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들어질 때는 자율과 창조성이 있는데 고칠 때는 행정력이 개입하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김 위원=최근 탐사보도의 방향이 ‘진화와 공존’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전 탐사보도는 문제를 알리는 데 머문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를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문화는 공존 상생 차원에서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고 위원=언론이 문화를 다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숭례문의 경우 5년간의 복원 과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위해 백서를 만드는 게 좋다고 봅니다. 성공만큼 실패의 경험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위원장=숭례문의 이전 복원 당시에는 도감 등을 설치해 전문가에게 맡겼다는데 각종 기록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임을 물어 문화재청장을 서둘러 경질한 것에 대해 언론이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큽니다.

고 위원=문책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조달청 단가 문제 등 시스템에 대한 점검이라든지, 복원과정에 대한 논의 자체도 중요합니다. 국보 1호의 부실을 논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의식도 재건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될 때부터 언제까지 복구할 것인지가 관심사항이었습니다. 부실복구 논란을 겪으면서 문화재 복원이라는 게 공사기간을 정하고, 서둘러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리라 봅니다.

이 위원장=오랜 시간에 걸쳐 제대로 정신과 얼을 가지고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이 결국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언론이 선도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 위원=마카오의 한 유적지처럼 훼손된 문화재를 그대로 두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시간적 기록입니다.

―내년엔 지방자치단체 선거 등 대형 행사가 많은 한 해입니다. 내년을 위한 제언도 해주시길 바랍니다.

김 위원=동아일보가 내년에는 데이터 저널리즘을 본격적으로 다뤘으면 좋겠습니다.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으로 가치를 찾아 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게 언론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위원=1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 시점에서 공공성 있는 신문은 좀 더 나은 ‘가치’에 힘을 실어주면서 여론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정리=김동원 daviskim@donga.com·우경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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