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경준]CEO는 간수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6일 03시 00분


정경준 산업부 차장
정경준 산업부 차장
요즘엔 기삿거리도 안 되지만 술집에서 주먹다툼을 하다 경찰서 신세를 지는 사람들 얘기가 신문 한구석에 실리던 때가 종종 있었다. 상당수는 우연히 마주친 눈길을 서로 피하지 않다가 한쪽이 “뭘 봐?”라며 시비를 걸고, 상대방이 격하게 반응해 일어난 것이다. 이 정도는 아니라도 누군가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 불편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권투선수들은 공이 울리기 전에 눈싸움부터 한다. 눈으로 상대를 제압하면 8할은 이기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이렇듯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시선은 큰 역할을 한다.

키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면 두 사람의 시선은 수평에 가깝다. 그래서 서로 만만하게 여긴다. 그런데 높은 곳에 오르면 관계가 바뀐다. 자전거만 타 봐도 알 수 있다. 자전거 안장은 대략 땅에서 80cm 높이다. 여기에 엉덩이를 걸치고 허리를 펴면 눈높이가 달라진다. 길을 걷는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게 된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상대의 정수리까지 다 눈에 들어온다. 짧은 순간이지만 눈길이 마주쳐도 편안하다. 초등학교 다닐 때 구령대 위에 오르면 교장선생님이 된 것같이 느꼈던 것처럼 우월감마저 든다.

이런 상황은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원형 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에서 극에 달한다. 판옵티콘은 중앙에 세운 높은 탑에 간수의 방을 마련하고 원의 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독방을 촘촘하게 만든 구조다. 간수는 우월한 시선을 활용해 사방을 굽어보며 효율적으로 죄수들을 감시한다. 감시탑의 불까지 끄면 죄수들은 아예 간수를 바라볼 수 없고, 바라보임을 당할 뿐이다. 설령 간수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죄수들은 늘 감시당한다고 느껴 스스로를 감시하고 고분고분해진다.

미셸 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이를 ‘시선의 권력’이라는 말로 풀어냈다. 나는 볼 수 없는데 누군가가 나를 은밀하게 바라본다면 나는 그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반대로 상대방은 나를 못 보는데 나는 상대를 볼 수 있다면 나는 권력을 쥐게 된다.

물리적 눈높이가 아니라 조직 내 지위가 높아지는 때에도 시선의 불평등은 확대 재생산되기 십상이다. 상사의 눈초리에 맞설 수 있는 부하는 많지 않다. 시선을 피하는 부하를 보며 상사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시선의 권력을 즐기고 독단에 빠져든다. 그런 상사와 일하는 부하들은 더욱 위축되고 조직은 무력감에서 헤어날 수 없다.

기업들의 연말 사장단 및 임원 인사가 한창이다. 조용히 물러나는 이들도 있지만 그보다 많은 수는 승진의 기쁨을 맛본다. 잘나가는 대기업에서 ‘직장인의 꽃’인 임원으로 승진하면 수십 가지가 달라진다고 한다. 연봉이 껑충 뛰고 법인카드 한도가 늘어난다. 회사 일로 출장을 갈 때는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다. 승용차, 골프회원권도 나온다. 최고경영자(CEO)가 된다면 말할 것도 없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것들과 함께 시선의 권력도 강해진다는 점이다.

경영학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 등은 ‘새 CEO에게 닥칠 7가지 놀라움’이라는 논문에서 신임 CEO는 회사의 정보를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 기업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CEO에 임명되자마자 자신에게 도달하는 모든 정보는 여과되고, 가장 가깝게 지냈던 이들조차 나쁜 소식을 전달하는 데 신중해지기 때문이다. 현장을 방문하고 젊은 직원들과 식사도 하지만 이벤트성이어선 곤란하다. 시선의 권력을 스스로 통제하지 않는 CEO는 판옵티콘의 간수 신세를 면키 어렵다.

정경준 산업부 차장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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