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진당, 남한 혁명을 위한 北의 침투로로 이용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7일 03시 00분


1980년대 남한 주사파의 창시자인 김영환 씨는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규모 아사(餓死) 사태를 접한 뒤 전향해 현재 북한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고 지하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만든 게 1992년 3월 16일이다. 그해 4월 12일 북한은 인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드보크’에 묻어놓은 물건을 찾아가라는 지령을 내린다. 김 씨는 다른 조직원을 시켜 드보크에서 공작금 40만 달러 및 권총 2정과 실탄, 무전기 2대, 보고용 난수표를 꺼내왔다.

드보크(dvoke)는 남파된 북한 공작원이 고정간첩에게 전달할 물건을 숨겨두는 비밀 매설지다. 러시아어로 참나무를 뜻하는 두프(dub)에서 변형된 말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락수단이 없던 시베리아 지방에서 큰 참나무에 표시를 남겨 물건을 주고받던 데서 유래했다. 민혁당은 현재 내란음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그가 이끈 지하 혁명조직(RO)의 뿌리다. 이 의원은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이었다.

최근 공안당국은 통진당 간부 전모 씨가 북한의 대남공작조직인 225국과 산하 반국가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총련)에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e메일 수십 건을 찾아냈다. 전 씨는 중국에서 활동 중인 225국 공작원과 접촉해 지령을 받은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11월 28일 구속됐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드보크도 진화하고 있다. 전 씨가 보낸 e메일의 수신인은 바로 전 씨 본인이었다. e메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북한과 공유해 하나의 e메일로 북측과 교신함으로써 보고 대상을 숨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신인이 드러나지 않는 ‘사이버 드보크’라 할 만하다. e메일은 해외 계정을 사용해 공안당국이 추적하기 힘들도록 했다. 통진당의 활동이 북한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정부가 청구한 통진당 해산심판과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조만간 시작된다. 북한이 통진당을 남한 제도권 침투의 드보크로 활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사건이다. 헌재는 엄정하고도 신속한 심리로 통진당 해산 논란을 매듭지어야 한다.
#북한#통합진보당#이석기#민혁당#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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