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현상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리는 예술가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시간의 경과, 공기의 흐름, 빛의 변화, 영혼의 떨림 같은.
정보영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으로 더욱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들을 그리는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화면 속에서 여러 개의 양초가 타고 있다. 그런데 양초의 길이, 불꽃의 크기와 방향, 촛농이 흘러내린 형태가 제각기 다르다. 게다가 어둠을 밝히는 용도의 촛불이 아니다. 태양빛 속에서도 스스로 태우기를 멈추지 않는 촛불이다. 작가는 왜 양초가 녹아내리는 과정을 단계별로 그린 것일까?
촛불의 죽음을 빌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 소멸된다는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밝은 햇빛 속의 촛불을 그린 것도 영원을 상징하는 자연광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인공광을 대비시켜 생명의 유한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모래시계와도 같은 촛불을 그린 이 그림은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명저 ‘촛불의 미학’에 나오는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의 불꽃 속에 세계가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불꽃은 하나의 생명을 갖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어떤 내적 존재의 눈에 보이는 징표이며 숨어있는 힘의 징표가 아닌가? … 그러므로 불꽃의 몽상가가 불꽃에 대해 말한다면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그는 시인인 것이다.’
왜 예술가의 눈에는 보이는 것들이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우리는 관심을 갖고 보려고 하지 않는 데다 그럴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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