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탈출 新동력은 여성… 남성 수준으로 일하면 美 GDP 5%↑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1일 03시 00분


[新 여성시대]5부 미국편<中>IT업계를 주무르는 여자들

한성미 미시간주립대 석사·웨인주립대 박사
한성미 미시간주립대 석사·웨인주립대 박사
경기 불황과 여성들의 자아실현 욕구로 미국 내 여성들이 고용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하긴 했지만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파트타임 많고 임금 수준은 낮아

우선 고용의 질이 좋지 않다. 미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여성들의 경우 파트타임 일자리가 많다. 전체 노동인구 중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여성 비율이 26%로 남성(13%)보다 월등히 높다. 게다가 파트타임 근로 남성들의 경우 25세 이상 비율이 57%인 반면 여성은 71%나 된다. 이는 곧 나이 든 여성들이 파트타임 직종에 많다는 것이고 가사와 직업을 병행하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미국 여성들의 고단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파트타임 여성들의 임금이 남성보다 높기는 하다.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일주일에 35시간 이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남성들보다 10%를 더 받았다.

하지만 풀타임으로 일할 경우에는 달라진다. 2012년 현재 미국 여성들은 미 노동 인구의 거의 절반(47%)을 차지하고 있지만 임금은 남자들이 평균 일주일에 854달러를 받을 때 691달러를 받았다. 같은 노동시간을 일하면서 남성 임금의 81%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것이다. 이 수치는 1979년 62%와 비교해 보면 대폭 늘어난 것이기는 하지만 미국도 여전히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의 임금이 싼 것이 사실이다.

미 여성정책연구소 연구원 아리앤 해기시 씨는 여성들의 평균 임금이 남성보다 낮은 이유에 대해 “직장 내 유리 천장과 같은 차별이 미국도 여전해 고임금을 받는 여성들이 남성보다 적기 때문이기도 하며 같은 직종이라고 하더라도 높은 임금을 받는 일에 남성들이 편중되어 있기 때문”(온라인저널 24/7 월스트리트 11월 6일자)이라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것이 세일즈(영업) 업종이다. 해기시 연구원은 “여성들은 의류 업종 같은 단가가 비교적 낮은 물품 세일즈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남성들은 자동차나 TV 같은 단가가 높은 제품들을 파는 일에 집중되어 제품 하나를 팔더라도 커미션이 높아 남녀 간 임금 격차가 크다”고 설명한다.

전문직종 내에서도 근무시간 차이 때문에 남녀 임금 격차가 생기는데, 대표적인 직업이 바로 의사이다. 미국 여성 의사들이 받는 임금은 남성 의사들의 3분의 2 수준이다. 이는 남성 의사들은 수당도 높고 일하는 시간도 보통 일주일에 최대 80시간을 일하는 외과 같은 분야에서 활약하는 반면 여의사들은 주로 임금 수준이 낮은 환자 관리나 상담 재활 진료 업무 등에서 일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미국 의료계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분야는 전통적으로 여성 인력이 많이 몰려 있는 상담과 의료보조 단 2개 분야에 불과하다.

정보기술(IT) 女風

최근 들어 미국 여성들의 일자리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업종이 있다면 정보기술(IT) 분야이다. 리더들이 대거 여성으로 포진되면서 노동 시장뿐 아니라 경제 리더십 분야에서 여성들의 영향력과 기여도를 높이고 있다. 2012년 현재 미국 내 IT 업계 전문직 여성 비율은 25.6%(노동통계청)이다. 3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특이한 것은 IBM 최고경영자(CEO) 버지니아 로메티를 비롯해 HP의 CEO 멕 휘트먼,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 전 구글 부사장이자 야후 CEO 머리사 메이어, 트위터 부사장 케이티 스탠턴 등 스타 리더들이 모두 여자라는 점이다.

IT 업계 여성 CEO 비율도 10%로 포천지 선정 1000대 기업의 여성 CEO 비율 4.5%와 비교해 두 배가 넘는다. 또 2012년 미국 여성 CEO 연봉 1∼10위 안에는 야후의 메이어(1위), IBM의 로메티(5위), HP의 휘트먼(6위) 등 IT 여성 리더들이 3명이나 포함되기도 했다.

이들은 또 하나같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면서 창업 초기부터 참여한 후 회사를 키워 왔으며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쇄신의 역할을 한 구원투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구글의 20번째 직원이자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로 입사해 부사장까지 오른 메이어는 야후 주가가 최저치를 기록한 2012년 7월 CEO로 취임한 뒤 주가를 최근 4년 이래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2010년 이래로 야후가 연 매출이 처음 상승하도록 만든 주역이다. 메이어는 논란이 많았던 재택근무를 금지시키는 등 조직 분위기를 조이고 최근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사진 기반 소셜 미디어 사이트인 텀블러를 10억 달러에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추진하면서 야후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페이스북 COO 샌드버그도 마찬가지다. 2008년 그녀가 취임했을 때 페이스북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한 괴짜 대학생(마크 저커버그)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었고 그런 이미지는 투자를 끌어오는 데 방해요소였다. 그러나 샌드버그는 이런 이미지를 바꾸는 데 도움을 주었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광고에서 괄목할 만한 매출을 올렸다. 2012년 페이스북 매출은 2010년의 두 배를 기록하면서 명실공히 IT 주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女가 男보다 고학력인 이유는

미국 여성들의 학력도 남성들보다 높다. 미 센서스국에 따르면 2009년 대학졸업자 중 여성은 91만6000명으로 남성 68만5000명보다 25%나 더 많다. 이는 일차적으로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 진출과 관련이 있긴 하지만 냉정한 고용시장이 만들어내는 다른 속사정도 있다.

남자들은 대학을 마치지 않아도 직장 초봉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여성들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진행한 ‘성(gender), 빚(debt), 대학 중도 탈락’이라는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대학을 중퇴하고 회사에 입사해도 초봉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평균 6500달러를 덜 받게 된다.

이러다 보니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대학 졸업을 꼭 해야겠다는 의지가 클 수밖에 없다. 오하이오 주립대학 연구팀은 “재학 중 학자금 대출금에 부담을 느낄 때 남학생과 여학생은 정반대의 결정을 내린다”며 “대출금이 1만2500달러 정도가 되었을 때 남학생은 ‘빨리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지만 여학생들은 ‘대출금이 늘더라도 졸업장을 따서 더 나은 직장을 얻는 게 낫다’는 결정을 내리기 쉽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 대학 남학생들은 여학생보다 대학 중도 탈락률이 높고 대학 진학률도 여성들보다 낮다. 또 평균적으로 여학생들보다 성적이 낮으며 학교를 싫어하는 경향도 강하다.

어떻든 여대생들의 높은 학업의지는 미국 내 유리 천장을 깨는 중요한 요소로 분석된다.

2012년 현재 16세 이상 노동인구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이 안 되는 47%이지만 이들 중 관리직과 전문직에서 일하고 있는 미국 여성은 절반이 넘는 52.7%로 남자보다 많은데 이는 ‘학력’과 연관이 깊다는 분석이다. 직위가 높아질수록 학위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에 더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여자들이 그렇지 않은 남자들보다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다.

미국 여성들의 고학력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에서 25세 이상이면서 석사 이상 학위를 가진 여성은 1090만 명으로 남성의 1050만 명보다 40만 명가량 많다. 또 최고 수준의 경영학석사(MBA) 과정이 있는 하버드대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2013년 여성 입학생들이 차지한 비율도 각각 39%와 45%에 달한다.

여성의 사회 참여는 개인의 자아실현과 가정경제에 큰 기여를 할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표한 ‘여성, 직업, 경제―남녀평등을 통한 거시적 경제 이익’이란 보고서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은 보다 많은 여성들이 경제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보고서는 “여성은 전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경제적 기여도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보다 훨씬 낮다. 이는 거시 경제 전반에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다”면서 “만약 여성들이 남성과 같은 수준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한다면 미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5%, 일본은 GDP의 9%, 이집트는 GDP의 34%를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성미 미시간주립대 석사·웨인주립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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