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무실에 흥미로운 자료 하나가 도착했다. ‘새마을운동’을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부서가 중남미 국가들의 경제개발에 관해 연구 및 자문을 주 업무로 하고 있는 터라 부서 동료들의 관심은 컸다. 하지만 관심은 이내 사라졌고, “So What?”(그래서 어쨌다는 거지?)이라는 물음이 이어졌다. 동료들은 “새마을운동 자체보다는 한국이 어떻게 지금의 최첨단기술 기반 국가로 성장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을 벌인 지 꽤 됐다. 이는 우리만의 발전 노하우, 즉 ‘한강의 기적’을 전수하는 사업이다. 내가 담당하는 중남미 대륙에서만 해도 볼리비아, 브라질, 콜롬비아, 도미니카공화국, 에콰도르, 온두라스, 멕시코, 파나마, 페루까지 총 9개국이 전수받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다는 게 자랑스러운 순간이다. 하지만 조금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각 국가에 맞춤형 개발정책 컨설팅을 제공하면 그 자체로 끝난 것일까?
모든 컨설팅이 그렇지만, 특히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자문 사업은 결과물이 중요하다. 한 국가가 전수받은 정책을 실제로 집행했을 때, 정책 효과는 자국 국민에게 직간접적으로 전달된다. ‘KSP 한류’ 바람을 잠시 부는 바람에 그치지 않고 토네이도 수준으로 격상 시키려면 결과물로 승부해야만 한다.
우선 한 국가에 잡힌 사업 예산이나 실무를 진행하는 연구원들의 전문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 국가의 개발컨설팅에 투입되는 비용은 보통 1억∼3억 원 정도이다. 자문 기간도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컨설팅 업계의 수익구조에 비추어 본다면 예산 대비 다소 긴 게 사실이다. 그리고 수주한 연구기관들은 자문 국가를 며칠간 방문해 인터뷰를 하고 차후 그 나라 공무원들을 초청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최종 보고를 위해 또 한 번 해당 국가를 방문하는 일도 있다. 이런 비용을 감안하면 실제 연구기관들이 남기는 수익은 그리 높지 않다. 이와 같은 저수익 구조가 곧 결과물의 질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여기에 중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어를 쓰고, 브라질의 경우 포르투갈어를 쓰는데 우리나라엔 이런 언어에 능숙하고 경제개발 자문까지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별로 없다. 기획재정부 관할 아래 실무 진행을 맡고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대부분 KSP 프로젝트를 민간연구소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기관에 발주하기 때문에 실제로 진행하는 실무진은 국제개발컨설팅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대부분 중남미 국가들은 대한민국의 성장 과정과는 큰 차이를 보여 우리를 그대로 벤치마킹하기에는 여러 제약이 존재한다. 중남미 경제발전 분야에 오랜 기간 경력을 보유한 전문가를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다.
정부는 KSP만을 위한 전담 조직을 만들어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육성 정책을 심각히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정부는 KSP에 충분한 예산을 배정함으로써 연구 결과물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외 여러 대학과 협정을 맺어 우리 후배들이 대학 1학년 때부터 KSP에 특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방안 등을 통해 특화된 전문 컨설턴트를 조기에 육성함으로써 기존의 공적개발원조(ODA), 유엔개발계획(UNDP) 등의 다양한 개발사업과의 차별화를 이끌어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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