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어린이집에서 키워줄테니 엄마들은 나가서 일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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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여성시대]5부 스웨덴편<上>육아는 엄마 아빠 공동의 몫

스톡홀름 거리에는 평일에도 유모차를 끄는 젊은 아빠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십중팔구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들이다. 스웨덴의 여름이었던 올해 9월 거리에서 만난 아빠들. 스톡홀름=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스톡홀름 거리에는 평일에도 유모차를 끄는 젊은 아빠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십중팔구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들이다. 스웨덴의 여름이었던 올해 9월 거리에서 만난 아빠들. 스톡홀름=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스톡홀름에서 고등법원 판사로 일하는 페테르손 씨의 하루는 네 살짜리 딸을 집에서 10여 분 떨어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일로 시작한다. 판사 3년차인 그는 3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이 일을 했다. 저녁 퇴근길에 딸을 유치원에서 찾아오는 일은 대기업 회사원으로 근무하는 아내와 번갈아 한다. 하지만 페테르손 씨의 직장이 아내의 직장보다 어린이집에서 더 가깝기 때문에 퇴근길에 딸을 데려오는 일도 그가 하는 경우가 많다.

딸이 갑자기 아파 어린이집을 쉬어야 하거나 어린이집에서 다쳐 갑자기 집에 돌아와야 하는 등 긴급 상황에 처하게 됐을 때 주로 달려가는 것도 아빠인 그다. 페테르손 씨는 그럴 때마다 당당하게 직장에 ‘휴가’를 내고 딸을 돌보거나 어린이집으로 딸을 데리러 달려간다.

그는 “아빠가 아이 때문에 급히 퇴근을 해야 한다거나 하루 이틀 쉬는 것은 스웨덴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급한 비즈니스 업무 약속 때에도 남자들이 ‘아이 때문에 갑자기 못 온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직장 상사도 아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대부분 ‘오케이’”라고 했다.

‘왜 남자가 아이 돌보나’는 금기어

페테르손 씨의 사례는 스웨덴에서 매우 일반적인 경우다. 이 나라에서 자녀를 둔 부모의 하루는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일부터 시작하며 대략 오후 4시가 되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온다. 장관 국회의원 기업인 노동자 실업자 할 것 없이 모든 부모, 대부분의 가정이 마찬가지다.

본보 ‘신여성시대’ 기획팀은 2부 전문직 편에서도 자세히 소개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고학력화와 사회 진출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일하는 엄마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육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성 평등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4부 ‘미국 편’(하)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좀 달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성 평등 국가라는 사실이 무색하지 않게 여자들이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 등이 잘 갖춰져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육아는 엄마 아빠 공동의 몫’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남들에게 해서는 안 될 금기어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인종차별적 발언이고 두 번째는 왜 남자가 아이를 돌보나 하는 푸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일까.

이 나라 출산휴가는 부모 합산 480일이다. 요즘 우리도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기간이 1년(6세 이하)이니 겉으로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는 육아에 관한 부담을 엄마에게만 지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출산휴가 480일 중 의무 휴가인 60일에 대해 엄마 아빠 둘 중 한 사람이 의무적으로 써야 하고 나머지는 형편에 따라 부모 중 한 사람이, 혹은 번갈아 가며 쓸 수 있다. 480일에서 90일을 뺀 390일 동안에는 봉급의 80%를 지원받는다. 아이가 12세가 될 때까지는 아프거나 병원에 가야 할 때 엄마 또는 아빠가 휴가 또는 휴직을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는데 이 기간에도 봉급의 80%를 받는다.

눈치보지 않는 육아 휴가-휴직

기자는 이런 제도가 과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작동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 교포 엄마들을 만나 보았다. 스웨덴의 대표적 다국적기업인 패션기업 H&M에서 일하는 김동은 씨는 여섯 살, 세 살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출산 및 육아휴직을 소개하며 ‘엄마 휴가’ ‘아빠 휴가’라는 표현을 썼다. 그의 말이다.

“회사 처음 들어와서 오후 3시 반에 어린이집에 아이 찾으러 가야 한다고 짐을 챙겨 일어나는 남자 직원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 역시 두 아이를 낳은 뒤 각각 1년씩 엄마가 쉬는 ‘엄마 휴가’를 썼고 남편도 ‘아빠 휴가’를 각각 6개월 썼다. 내가 쉴 때는 남편이 일하고 남편이 쉴 때는 내가 일하는 식이었다. 또 어린이집이 집 근처 5분 거리에 있어서 남편이랑 교대로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찾아온다.”

그의 말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요즘 한국에도 화두가 되고 있는 시간선택근로제였다. 한국은 주로 경력단절 여성들의 일자리 복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스웨덴의 시간선택근로제는 철저히 ‘육아’와 연동되어 있다. 김 씨는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8세 이하가 될 때까지 엄마나 아빠 모두 언제든 시간선택근로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년 중 몇 개월은 오후 근무만 하겠다든지, 오전 근무만 하겠다든지, 아니면 일주일 총 40시간 중 30시간만 일하겠다든지, 격주 금요일은 무조건 쉬겠다든지 하는 식으로 노동시간대를 자유롭게 선택한다. 물론 몇 개월 전에 직장 상사와 이 모든 것을 상의해 갑작스럽게 인력이 비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스웨덴 기업에서 인사담당자는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직원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면서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근무 상황을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선택근로제 언제든 가능

근로시간이 줄면 월급도 당연히 줄어든다. 또 모든 부모가 시간선택근로를 하는 게 아니라 희망자에 한해서 한다. 중요한 것은 직장 가진 여성들이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아도 아이가 12세가 될 때까지는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선택하는 것이 제도로 보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에서 살며 딸 둘을 키우고 있는 헤나 씨(35)는 “나 역시 딸 둘이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업무량의 75%를 일하고 임금도 75%를 받았다. 승진이 조금 더디고 임금이 조금 깎이는 불이익이 있지만 일을 계속하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으니 만족했다”고 했다.

수도인 스톡홀름을 돌아다니다 보면 인상적인 것이 거리마다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 나오는 젊은 아빠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육아휴직 중인 경우가 많았다. 다국적기업 볼보에 다니는 요한 볼크만 씨(40)는 “스웨덴에서는 아빠들 중에도 커리어보다는 아이 키우는 일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 상의해 아내가 일을 중시하면 남편이 양보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월세는 남편이 부담하고 생활비는 아내가’ 하는 식으로 경제적으로도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가사나 육아 부담도 똑같이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제공은 지자체 의무

아무리 출산 및 육아 휴직 제도가 잘되어 있어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어린이집을 향한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의사로 일하는 마리아 씨(40)는 “솔직히 여자라고 해서 모두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만 해도 아이랑 함께 있는 시간보다는 밖에 나와 환자들을 돌보는 시간이 더 재미있다”면서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밖에서 맘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은 아이를 나보다 더 사랑해 주고 잘 교육해 주는 어린이집 선생님 덕분”이라고 했다. 실제로 어린이집 선생님은 스웨덴에서 매년 국민의 존경을 받는 직업 2, 3위에 꼽힌다.

아이가 13개월째부터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 이용료는 저렴한 편이다. 첫 아이는 가계 소득에 따라 수입의 3% 혹은 최대 1260크로나(약 20만 원)를 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둘째 아이는 최대 840크로나(약 13만4000원), 셋째 아이는 최대 420크로나(약 6만7000원)를 지불한다. 저소득 가정은 무료다.

아이를 돌봐 주는 시간은 보통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지만 늦게까지 일하는 부모를 위해 저녁반도 운영한다. 각 지자체에서는 어린이집 자리를 확보해 제공할 의무를 진다. 만약 지자체 안에 자리가 없을 경우 다른 지역 어린이집을 알선해 주어야 한다. 스톡홀름 어린이집에서 만난 교사는 “우리나라는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키워 줄 테니 엄마들은 나가서 일하라’는 데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고 했다.

스톡홀름=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스웨덴#어린이집#아빠#육아휴직#시간선택근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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