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또 하나의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8일 03시 00분


교육 피로감 심한 한국… 학생 학력 뛰어나도 조롱이나 냉소 일색
동아시아 시대 예고하는 중국 싱가포르 일본의 강세
고유 장점 버리면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한국 교육에 대해 국내에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여야나 좌우가 다르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5월 스승의 날에 “지나친 경쟁과 입시 위주 교육 때문에 선생님도,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2년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한국의 15세 학생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한 것에 대해 전교조는 ‘세계 최장의 학습 노동과 지나친 선행 학습, 문제풀이 위주 학습의 결과’라고 일축했다.

얼마 전 OECD가 공개한 평가 결과에서 한국 학생들은 전체 65개국 중에서 수학 5위, 읽기 5위, 과학 7위를 기록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일이지만 냉소와 비아냥거리는 소리만 가득하다.

그러나 해외로 눈을 돌리면 세계 각국은 PISA 결과에 저마다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최상위권이었다가 순위가 하락한 핀란드(수학 12위, 읽기 6위, 과학 5위)의 교육 당국은 “교육 개발에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핀란드 언론들은 “황금시대는 끝났다”고 논평했다. 반면 독일의 요하나 방카 교육부 장관은 상위권 성적(수학 16위, 읽기 20위, 과학 12위)을 통보받은 직후 “독일의 교육이 기회균등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반색했다. 독일은 2000년 PISA 결과 낮은 순위가 나오자 ‘PISA 충격’이라며 교육 전반을 재정비한 바 있다.

국제적인 학력평가 시험으로는 PISA와 함께 ‘수학 과학 성취도 국제비교연구(TIMSS)’가 대표적이다. TIMSS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측정하는 시험이라면 PISA는 응용 능력을 평가한다. 2012년 PISA에 참여한 학생은 51만 명에 달했다. 평가 대상인 15세는 의무교육을 막 끝낸 시점이다. 이들의 기초학력을 측정해 미래의 국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서 세계 각국이 공신력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 평가에서 최상위권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독차지했다. 중국 상하이는 3개 과목 모두에서 압도적 1위에 올랐다. 수학 평균 성적은 613점으로 경쟁국인 미국 학생보다 무려 132점 높았다. 상하이 학생들만 평가에 참여해 중국을 대표할 수 없다는 해석도 나오지만 상하이의 인구는 한국의 수도권과 맞먹는 2400만 명에 이른다. 같은 중화권인 싱가포르 홍콩 대만은 PISA 순위에서 상하이 뒤를 잇고 있다. 중국의 위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서구 국가들은 벌써부터 중국 교육의 성공요인 분석에 들어갔다. OECD 측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학업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피가로는 ‘부모들의 교육열이 높고, 대학입시가 어렵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분야보다 학업에서 높은 성과를 얻는 것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에서 배경을 찾는 전문가도 많다. 한국의 사정과도 별로 다르지 않다.

학습량을 크게 줄인 ‘유토리(여유) 교육’ 도입 이후 PISA 순위가 크게 뒤처져 비상이 걸렸던 일본은 2007년 유토리 교육과 결별한 뒤 이번 평가에서 최상위권에 복귀했다. 수학에서는 7위로 한국보다 낮았지만 읽기, 과학에서는 각각 4위로 한국을 앞섰다. 다시 고삐를 바짝 조여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원래 위치로 돌아온 셈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10월 뉴욕의 한 학교를 찾아가 “각국이 미국을 앞서려고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미국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 국가들은 동아시아 학생들의 높은 성적에 대해 “엄격한 교육을 통해 얻은 결과”라고 평가절하를 하면서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PISA 결과가 앞으로도 계속되도록 기초교육의 질을 양호하게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학력 중시의 교육정책이 마침내 효과를 보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주요 경쟁국들이 교육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놓고 또 하나의 전쟁에 돌입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피로감은 극심하다. 박근혜 정부는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 교육’을 내세우며 학습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 교육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를 부정할 일은 아니다. 현 정부의 행복 교육이 일본의 실패 사례인 유토리 교육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내부만 쳐다보지 말고 울타리 바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냉정히 바라보아야 할 때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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