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부동항 칼리닌그라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9일 03시 00분


중고교 시절 국사 시간, 구한말 러일전쟁 대목에 꼭 등장하는 표현이 있었다. “러시아제국은 팽창정책의 일환으로 극동 지역의 부동항(不凍港)을 확보하기 위해 한반도에 눈독을 들이고….” 한 블로거는 부동항이 뭔지 모른 채 외웠다고 썼다. 한자로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바다가 얼어붙는다는 것도 상상이 안 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가서야 그는 알게 됐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바다가 사라졌다.…주위는 온통 새하얀 빙원이었다.”

▷러시아는 군사적 경제적으로 부동항이 절실했지만 해양대국 영국 때문에 유럽 쪽에선 불가능했다. 한반도의 부동항을 노린 러시아와 이를 막는 일본이 맞부딪친 것이 러일전쟁이다. 러시아의 태평양 제2함대는 일본을 치기 위해 항구가 얼기 전인 1904년 10월 위풍당당하게 발트 해를 떠났다. 희망봉을 돌아가는 바닷길은 너무도 멀었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인정하고 있었던 일본은 러일전쟁 중에 독도의 지정학적 군사적 가치를 알아보고 각의에서 일본 영토로 편입해 버렸다(1905년 1월 28일). 러시아 함대는 1905년 봄이 돼서야 기진맥진해 쓰시마해협에 도착했고 일본에 궤멸됐다.

▷현재 러시아는 유럽 쪽의 유일한 부동항으로 칼리닌그라드를 갖고 있다. 한때 프로이센의 주도(主都)였고, 독일 철학자 칸트의 고향이지만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소련의 리투아니아 공화국 땅으로 편입됐다. 소련 해체 뒤에도 러시아 땅으로 남은 이유는 1990년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독일 정부가 소련 영토임을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이곳에 유럽 심장부를 겨냥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이 배치돼 있다고 러시아가 어제 인정했다. 칼리닌그라드를 둘러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미국이 즉각 반발했지만 러시아는 미국과 나토가 유럽 미사일방어(MD)망 구축 계획을 강행하는 데 따른 대응 조치라며 완강하다. 1차 세계대전 발발 100년이 되는 2014년을 앞두고 유럽에선 전쟁 전야(前夜)에 대한 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거대한 체스판 유럽에서 칼리닌그라드는 고독한 섬 같은 운명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러시아#부동항#러일전쟁#칼리닌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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