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큐슈市의 실험… “여성친화 기업, 조달 계약때 가산점 주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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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여성시대]5부 해외편 일본<下>지자체들의 몸부림

일본 정부는 요즘 지방자치단체별로 가정친화, 여성친화 정책을 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아버지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사진은 후쿠오카 현 무나카타 시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모습. 사진 출처 무나카타 시 홈페이지
일본 정부는 요즘 지방자치단체별로 가정친화, 여성친화 정책을 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아버지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사진은 후쿠오카 현 무나카타 시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모습. 사진 출처 무나카타 시 홈페이지
“성평등 정책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듣겠다는 취지로 시청에 상담 창구를 만들었더니 여성들에게서 전화가 많이 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남성분들 전화가 많습니다. 가족 부양을 책임지며 홀로 끙끙 앓는 남자들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어느 날 나이든 남자 어르신은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해 ‘왜 여자들만을 위해 세상이 돌아가는 거냐’며 호통을 치지 뭡니까.” 기타큐슈(北九州) 시청에서 남녀평등정책을 담당하는 고미네 가즈아키 아동가정국 남녀공동참획(參畵)추진부 계장의 말이다.

남자도 쉬고 싶다!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이끈 동력은 근면한 가장들이었다. 늦게 퇴근하면 아이들은 자고 있기 일쑤여서 크는 모습도 제대로 못 보는 게 일본 내 흔한 가장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요즘 일본에서도 이런 풍조가 흔들리고 있다. 남성들 스스로 “‘일개미’와 같은 삶에 지쳐버렸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도 내각부가 펴낸 ‘남녀공동참획백서’에 따르면, 일본 남자들의 이런 속내가 드러난다.

내각부는 전국의 대표성 있는 연령·계층에서 사람을 뽑아(남자 1432명, 여자 1601명) 이상과 현실을 비교해 달라고 했다. ‘일’ ‘가정생활’ ‘개인생활’을 키워드로 ‘본인의 현재 처한 삶’과 ‘진짜 원하는 삶’을 고르라고 했더니 40대 남성의 절반이 넘는 51.3%가 ‘일을 최우선으로 살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진짜 원하는 삶은 달랐다. 진짜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항목에서 ‘일을 최우선으로 살고 싶다’고 대답한 40대 남성은 10.3%에 불과했다.

이 밖에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맞춰 살고 싶다’(32.5%)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가정생활을 최우선시하며 살고 싶다’(25.6%)는 답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런 경향은 30대 남성도 마찬가지였다. 47.3%는 ‘현재 일을 최우선으로 살고 있다’고 답했지만, 정말 그런 삶을 희망하는 사람은 7.3%에 불과했다.

반면 여성은 달랐다. 30대 여성의 41.6%가 ‘현재 가정생활을 우선으로 살고 있다’면서도 이런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은 29.6%였다. 여자들 역시 ‘일과 가정생활의 밸런스를 맞춰서 살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으며 특히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더 많아져 20대 여성의 경우 41.3%가 그런 삶을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꼽았다.

고미네 계장은 “일본 사회도 많이 변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학부모 참관수업에 가면 아버지는 나 혼자였지만, 최근 부쩍 아버지들의 참여율이 높아졌다. 지금 일본 가장들 중 밖에서 일만 하느라 자식과 멀어지는 가장이 되는 걸 원하는 남자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나온 일본의 여성정책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를 독려하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남성들의 과도한 근무시간과 부양의무를 덜어주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와구치 미키 남녀공동참획추진부 조사계장은 “가정이 바뀌려면 남자가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30, 40대 아빠들이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잔업을 하는 시스템에서는 가사나 육아에 대한 부담은 여자가 질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 명의 남성이 오랫동안 근무해서 전체를 가져가는 것이 행복할까, 아니면 여러 명의 남녀가 일과 급여를 나누는 것이 행복할까. 우리가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에 몰두하고 싶으면 하고 일과 가사를 병행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식으로 선택지가 있다면 남자 중에도 좀 더 아이를 돌보고, 여자 중에도 사회생활에 좀 더 몰두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단축근무 업체에 포상

사회보험노무사 사자키 가즈코 씨(여·국가인증 산업카운셀러)도 “남녀 상관없이 전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현 일본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사자키 씨는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회사를 성장시킨 대표적인 예로 일본 최대의 패션상품판매회사인 ‘조조타운(ZOZOTOWN)’을 들었다.

직원 380명이 일하는 이 회사는 2004년 12월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다른 회사들처럼 하루 8시간 근무를 했다. 하지만 2010년 8월 7.5시간으로 줄인 데 이어 2012년부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월급은 종전과 똑같이 받는다. 단,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이 회사 사장은 “회의는 절대 30분을 넘기지 말라” “서면보고 대신 대면보고로 끝내라” “장문(長文) e메일 절대 금지”를 외친다. 올해 11월 말 이 회사의 2분기 순이익은 약 35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7.3% 늘었다.

일본 정부는 2000년 12월 ‘제1차 남녀공동참획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고용에 남녀 차별을 없애겠다’ ‘여성이 결혼과 출산으로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M자형(경력단절) 커브를 없애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용의 주체인 기업들은 시큰둥하다. 노동조합도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세가와 노부코 후쿠오카젠더연구소 이사는 “일본 노동조합은 ‘남자 정규직’을 위한 조합이다. 여자 비정규직을 위해서 힘을 보태주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이 남성의 몫을 빼앗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조합장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타큐슈 시가 대표적이다. 중앙정부 정책과는 별도로 자치단체가 나서 2002년 4월 관련 조례를 만들어 가정친화적이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기업들에 상을 주고 있다. 심사과정도 까다롭다. 전문 조사원들이 불시에 회사를 찾아가 사원들의 만족도를 조사하고, 각종 데이터를 받아 해당 기업이 얼마나 여성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는지 점검한다. 처음에는 응모하는 회사가 적었지만, 지금은 경쟁률이 치열하다. 올해는 단축근무와 유연근무를 장려한 미즈호증권주식회사 기타큐슈지점이 시장(市長)상을 탔다. 수상 기업은 시(市)와의 각종 조달 계약에서 가산점을 받는 혜택이 주어진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기타큐슈 시의회 의원(4선)으로 활동 중인 모리모토 유미 씨(48)는 “일본 사회의 여러 가지 문화가 있기 때문에, 개인 한 명의 힘만으로 사회가 바뀌진 않는다. 그동안 여성정책을 살펴보면, 제일 윗사람(시장)의 성향이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시장은 남자지만 여성의 사회적 참여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2008년 후생노동성 공무원 출신인 아사다 부시장을 영입해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당연히 지역 사회와 지역 내 민간기업들도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타큐슈 시 공무원 중 여성관리직 비율이 6.2%(2008년)에서 12%(2013년)로 눈에 띄게 상승했다.

보육 최악도시 오명 씻어

최근 주목을 받는 또 하나의 지역은 요코하마(橫濱) 시다. 2009년 말 취임한 하야시 후미코 시장(67·여)은 ‘전국에서 어린이집 대기 줄이 제일 길다’는 악평을 듣는 요코하마의 보육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아동문제의 벽을 깼다’며 일본 언론도 관심이 높다. BMW도쿄주식회사, 주식회사 다이에의 사장을 맡아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보육 수요자인 여성과 아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했다. 우선 풀타임으로 일하는 엄마와 하루에 3시간, 또는 일주일에 3일 정도만 맡기면 되는 파트타임직 엄마들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보육시설과 서비스를 선보였다. 요코하마 시의 보육 정원은 2009년 3만6871명에서 2013년 4월 현재 4만8916명으로 늘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엄마들이 자신에게 맞는 보육서비스를 찾을 수 있도록 시청에 전문상담사를 배치했다. 어린이집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그동안 낮은 처우로 일을 그만뒀던 여성 보육교사들의 취업도 크게 늘었다.

그 결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1500명이 넘었던 아동 대기자 수는 올해 4월 ‘0’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최근 230여 명으로 증가했다. 하야시 시장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하고 나니, ‘이제 다시 일하고 싶다’는 여성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기타큐슈=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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