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구세군 박종덕 사령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어머니 유품, 죽은 아기 돌반지, 폐지 판 쌈짓돈… 불황에도 온정은 더 늘어나네요”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18일 서울 충정로역 지하도. ‘구세군 자선냄비 자원봉사자’라는 글씨가 박힌 붉은 점퍼를 입은 청년이 종을 흔들고 있었다. 중년 여성이 빨간 자선냄비 앞을 지나 조금 걷다가 다시 돌아왔다. 동그랗게 말린 손이 모금함으로 향했다. 이날 만난 박종덕 구세군 사령관(63)의 충정로 사무실에도 자선냄비가 서 있었다. 구세군이 잡은 12월 한 달 목표액은 55억 원. 경기 불황에도 지난해보다 높게 잡았다. “현재 추세로는 목표 달성이 순조로울 것 같다”고 박 사령관은 말했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대한 한숨은 끊이질 않는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내놓는 주머닛돈은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욱이 구세군 자선냄비가 국내에 등장한 1928년 이래 85년 동안 성금은 한 번도 줄지 않았다고 했다. 해마다 목표액은 전년보다 높았다. 85년 전 국내 자선냄비의 첫 모금액은 580원, 지난해에는 51억2800만 원이었다. 수십 년간 식지 않는 모금 열기에 대한 박 사령관의 ‘분석’이 궁금했다. 》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리를 오가다 가까이 있는 자선냄비를 보고 마음이 움직이면, 지갑을 꺼내 모금에 동참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다들 어렵지만 어려운 사람과 같이해야지 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제 위기에도 자극받지 않고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또 하나는 구세군 사관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리에 나선 사관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모금이 저조하면 모금 시간을 늘려서라도, 목소리를 더 높이면서 열심히 권합니다. 목표를 이루려는 사명감 어린 열정이 참여를 북돋운다고 생각합니다.”

85년동안 식지 않는 모금 열기

연말을 훈훈하게 달구는 것 중 하나는 자선냄비를 향한 익명의 천사들이다. 지난해 자신을 ‘신월동 주민’이라고 소개한 편지와 1억57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담은 봉투가 나온 데 이어, 올해는 6800만 원 상당의 무기명채권과 헌혈증서 100장 등이 접수됐다.

“3년 동안 매일 폐지 모아 판 돈이에요” 300만 원과 함께 보내온 중곡동 할머니의 편지(위 사진),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기의 돌반지를 기부한 엄마의 편지(아래 사진). 구세군 제공
“3년 동안 매일 폐지 모아 판 돈이에요” 300만 원과 함께 보내온 중곡동 할머니의 편지(위 사진),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기의 돌반지를 기부한 엄마의 편지(아래 사진). 구세군 제공
“이달 초에는 금목걸이와 귀걸이, 반지 등이 담긴 봉투가 자선냄비에서 나왔습니다. ‘환갑을 맞았습니다. 기쁘게 받아주세요’라고 적힌 편지가 함께 들어 있었어요. 자선냄비를 향한 기부는 얼굴 없는 모금입니다. 요즘은 그야말로 어떻게든 자기를 알리려는 시대이고 작은 일만 해도 자랑하고 인정받으려는 게 세상 풍조인데, 이름도 드러내지 않고 도우시는 분을 보면 보통 마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이 자랑해도 될 일인데 말이지요. 세상살이에 휘둘리려 하지 않는 후원자들의 마음이 이해돼서 저희도 신원을 알려달라고 막 달려들지 않아요(웃음).”

그에게서 듣는 서민들의 기부 이야기에 마음이 덩달아 훈훈해졌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인 반지를 팔려다가 좋은 곳에 써주길 바란다며 보내온 분도 있었어요. ‘천국에서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훨훨 날아라!’라는 메모와 함께 온 아기의 돌반지를 보고 직원들의 눈시울이 뜨거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3년 동안 폐지를 수집해서 번 돈 300만 원을 기부한 할머니도 있었고요. 현장에 나가면 장애인들이 모금에 동참하는 것도 많이 봅니다. 액수가 많든 적든, 자선냄비를 가득 채우는 것은 그런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도움을 받아야 할 분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말입니다. 모금엔 물론 목표액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액수가 첫 번째 목적이 아니에요. 시기로는 한 해를 마감하면서 계절로는 추위를 느끼는 때에, 전 국민이 마음을 모아서 이웃들과 나누고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게 첫 목적입니다.”

박 사령관이 30여 년 전 명동에서 자선냄비 종을 울릴 때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냄비에 동전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냄비는 금세 무거워져 도중에 갈아야 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20여 년 전 전북 익산에서 근무할 때는 구세군인 버스 운전사가 버스회사에 모금 활동을 홍보해서, 지나가던 버스가 자선냄비 앞에 서선 버스 운전사들이 모금을 하기도 했다. “정류장도 아닌데 버스들이 계속 정차를 하고 기사들이 내리는 풍경이 이어지니 얼마나 진기했겠어요.” 추억을 회고하는 그의 얼굴에 시종일관 미소가 가득했다.

자선냄비엔 신용카드 단말기도 장착돼 있다.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시민들을 위한 편의인데, 의외로 신용카드를 통한 모금액은 많지 않다고 한다.

쪽방촌 사람들 삶 너무나 참담

“전체 모금액의 1%쯤 됩니다. 자선냄비는 역시 아날로그가 좋은가 봐요(웃음).”

자선냄비 모금액은 아동·청소년, 노인과 장애인, 다문화가정 지원사업 등에 쓰인다. 구세군은 모금 활동에 이어 직접 지원 활동에도 나선다. 현장에서 겪은 어려운 이웃들의 모습을 전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쪽방촌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아십니까? 두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새우잠을 자요. 제대로 돌아눕지도 못합니다. 창문이 썩어 부서져서 테이프로 막아놔도 찬바람을 제대로 막지 못합니다. 방 안에서 두꺼운 점퍼 입고 이불 뒤집어쓰고 하루를 견딥니다. 따뜻한 물이 안 나와서 씻는 것도 마음대로 못해요. 최근 만난, 희귀병을 앓는 네 살배기 여자아이도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제대로 걷지를 못해 늘 유모차를 타고 다니고 영양 공급이 잘 안 돼 눈이 잘 안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아빠가 일용직인데, 수술비도 밀려 있고 버는 돈은 죄다 약값으로 들어갑니다. 반지하방에 살다가 아이가 지하방의 곰팡이 균 때문에 몸이 더 안 좋아져서 이사를 해야 했어요. 주변엔 다 자기보다 잘사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지요? 어려운 사람들은 설혹 마주친다 해도 크게 와 닿지 않는 게 요즘 세상입니다. 그런데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는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무역 흑자…. 수치상으론 경제 번영을 이루고 있다지만, 그런 ‘기록’이 아니라,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웃이 없어야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요”라고 되묻고는 말을 이었다.

불우이웃 직접 지원 활동도

“구세군이 시작된 1865년 산업혁명기 영국은 노숙인이 넘쳐나던 때였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말과 소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았어요. 150년 전에 그랬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달라졌나요? 경제적으로 소외되어서 길거리에 내버려진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요즘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보세요. 간식에, 치약에, 미용실에…. 우리 사회 어려운 이웃들이 그만큼 돌봄을 받나요? 무상보육, 무상급식 같은 파격적인 복지정책이 잇달아 나오지요. 저는 그보다 앞서 참담한 어려움에 처한 그늘진 이웃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최근 한 대기업 직원들과 함께 쪽방촌 지원사업 현장에 참가해 “남을 도우면서 자신이 치유를 받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했다.

“다들 ‘아니 아직도 이렇게 사는 삶이 있었냐’며 너무 놀라더라고요. 막연히 듣기만 했는데 눈으로 직접 보고는 충격을 받은 거죠. 그러나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는 직원들이 그런 이들을 돌보고 같이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행복해하는 얼굴이었습니다. 이 엄혹한 경제 불황의 시기에, 좀더 가지면 행복할 것 같지요? 그렇다면 행복을 위한 물질적 넉넉함의 기준이 어디입니까? 누구도 답하지 못합니다. 다르게 말해볼까요. 길 가다가 가난한 사람한테 욕 한 번 얻어먹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럼 행복합니까? 혼자 잘 먹고 잘살아보라는 소리 들으면 밥 먹은 것이 살로 가냐고요. 더불어 살아가야 행복하고 따뜻한 세상이 되는 거지.”

좀더 갖는다고 행복할까요?

행복을 위한 물질의 기준에 대해선 30년 넘게 구세군으로 지내온 박 사령관이 삶으로 체득한 것이기도 하다. 구세군 사관의 월급(생활비)은 임관(사관후보생이 장교로 임명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구세군에서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한 뒤에는 4인 가족 최저 생계비 수준인 140만∼150만 원, 10년 이상 사역해도 200만 원 정도다. 자녀 수당이 별도로 있긴 하지만 이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다. 이렇듯 검약이 몸에 밴 생활에 대해 박 사령관은 “물질은 늘 ‘필요한 만큼’ 채워졌다”며 밝게 웃었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자선냄비가 더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 올까요.

“우리보다 수십 년 앞서 선진국의 길을 걸어온, 발전한 나라들도 돌봐야 할 사람이 아직 많아요. 여전히 우리 곁에는 그늘진 이웃들이 많습니다. 인간이 보다 낮은 곳에 있는 인간을 돌보고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그렇게 서로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울려 퍼질 겁니다.”

독자 여러분, 이제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빨간 자선냄비에 어려운 이웃을 위한 마음을 담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 구세군 ::

기독교 개신교의 한 교파로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를 표방한다. 사회사업을 선교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군대식 조직으로 운영되며 세계의 모든 구세군교회와 교인들이 한 대장의 통솔하에 있다. 신학교를 ‘사관학교’, 목회자를 ‘사관’으로 부르며 사관은 제복을 입고 활동한다. 목회자가 되려면 구세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사관으로 임관돼 임지로 부임하는 과정을 거친다.

※ 이 기사에는 목지선 씨(성신여대 영문과 졸)가 참여했습니다.

인터뷰=김지영 오피니언팀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