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모임으로 밤 지새우며 하루하루 요란한 한해의 끝자락
한암-탄허 큰스님 서예전 들러 禪筆의 깊은 가르침 접하니
시리도록 차고 맑은 冬天이 내 마음속에 들어선것 같아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한국의 큰스님 글씨―월정사의 한암(漢岩)과 탄허(呑虛)’를 보고 왔다. 다녀온 후 여러 날째 마음이 차분하다. 시리도록 차갑고 맑은 동천(冬天)이 마음에 들어선 것 같다. 이 특별전은 탄허 스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부터 시작된 순회전이라 한다. 국립춘천박물관에서 마지막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월정사와 대전 자광사, 양산 통도사, 안양 한마음선원 등에 소장된 두 스님의 서예 작품, 탁본, 현판 100여 점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은 오대산 월정사에 주석했던 큰스님들이다. 한암 스님은 서울 봉은사 조실로 계시다 1925년 하안거 후 “내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봄날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는 고별사를 남긴 후 오대산 상원사로 홀연 들어가셨다. 1951년 봄 열반할 때까지 26년 동안 동구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근대 한국불교사에서 네 번이나 종정에 추대된 고승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제자들이 피란을 종용했으나 “나는 여기에 앉은 채 생사를 맞이할 것이다”라며 거절했다. 1951년 국군이 전략상 상원사를 불태우려 하자 가사와 장삼을 입고 단정히 선당(禪堂) 한가운데 홀로 앉아 모두가 떠난 상원사를 지킨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스님은 그해 봄 앉은 채로 열반했다. 한암 스님은 기거하던 방 벽에 다음의 계잠(戒箴)을 좌우명처럼 붙여놓았다고 한다.
‘항상 절에 거(居)하면서 고요히 앉아 사유하라. 사람들과 휩쓸리지 않으며 무리지어 잡담하지 말라. 바깥 세계에 대하여 탐착하지 말라. 음식에 대하여 욕심내지 말라. 몸과 행동을 단정하고 바르게 하라. 모든 업(業)을 깨끗이 하라. 마음에 때가 묻지 않게 하라. 뜻은 고상하게, 지조는 굳게 가져라.’
탄허 스님은 3년 동안 한암 스님과 서신 문답을 주고받은 끝에 오대산 상원사로 입산해 한암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스님은 학문과 수양에 있어 겸손을 잃지 않은 최고의 학승이었다. 1975년 ‘신 화엄경합론’을 간행했는데, 이것은 ‘화엄경’ 관련 책들을 18년 동안 우리말로 번역한 것으로 무려 원고지 6만5200장 분량이었다.
두 스님의 글씨가 모두 선필(禪筆)에 이르렀지만, 한암 스님의 필체는 유독 단아하고 강직했다. 특히 한암 스님의 유품으로 조선총독 데라우치가 스님에게 공양한 금란가사를 선보이고 있었는데, 스님은 이 가사를 한 번도 걸치지 않았다고 하니 스님의 꼿꼿하고 곧은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탄허 스님의 글씨는 거침없이 활달했다. 내 시선을 붙잡은 탄허 스님의 글씨는 ‘바람이 일어나는 곳을 알고 은미(隱微)함 속에 드러남을 안다면, 함께 덕(德)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글귀였다. 이 구절은 ‘중용’의 것으로, 바람이 일어나는 곳이란 근원을 이르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기인하는 바를 알고 미세한 것 속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을 안다면 도(道)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내 안광(眼光)을 확 연 또 하나의 글씨는 ‘망적지적(忘適之適)’이라는 초서체 글씨였다. 알맞다는 생각마저 잊는다는, 만족한다는 생각까지도 잊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만족에 도달한다는 말이었다. 찾아보니 그 출처는 ‘장자’였다.
‘발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요, 허리에 대하여 잊어버리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요,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서로 합하기 때문이다. … 맞음에서 출발하여 그 어느 것이든 맞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은 알맞다는 생각까지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라는 가르침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한 해의 끝자락이라 송년 모임이 많은 요즘이다. 이곳저곳에서 술잔을 높이 들고 큰소리로 말하며 연일 밤을 보내고 있는 때에 두 스님의 글씨를 접하니 내 사는 하루하루가 너무 요란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눈에 가득 어지러운 것만 산처럼 쌓은 것 아니냐는 자성에 이르게 되었다. 가령 한 해의 맺음은 그 처음을 돌이켜보는 일일 것이니, 앞에서 이른 ‘바람이 일어난 곳’을 가만히 헤아려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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